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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내게 되돌려줄 100시간

2021-07-15

좀비 사태가 발발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감염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이대로 멸망되는 듯 했으나,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인류는 이를 희망이라 불렀습니다.

장르: CoC

감독: 티소

출연: 엘리엇 린드그렌, 크레센티 프림로즈

우리애...
준비됐으면
야옹해!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치사해. 야옹 같은 거 할 나이는 지났단 말이야. 안 하면 못 가게 할 거야?
웅...
레티는 귀여우니까 괜찮아
엘리엇 보고 싶으면 야옹해!
안 보고 싶으면 안 해도돼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너무해 ... ... (시선을 돌린다.) ... 그러면 할 것 같아?
... .... 야옹.
아구 귀여워 ><
시작할게요!
W. 시나
KPC 엘리엇 린드그렌
PC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다음 뉴스입니다.
연합 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의 생산공장을 올해 안으로 2배이상 늘릴것이며 감염자에 대한 수용시설 또한 확충할 것임을 발표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치료제가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으며…..
당신은 건조한 표정으로 어제자 재방송인 뉴스 화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습니다.
정오를 살짝 넘긴 시간,
병동 앞 대기실은 tv화면의 뉴스 소리나 간간히 들리는 대화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
좀비 사태가 발발한 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4시간 안에 감염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이대로 멸망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좀비 사태 이후 25개월이 지난 후인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학자들에 의한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인류는 이를 희망이자 구원이라 불렀습니다.
물론 치료제의 공식이 적힌 낡은 노트를 작성한 사람이 엘리엇이고
그것을 가져온 사람이 당신이라는 것은
아주 소수의 정부 관계자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요.
당신은 가방에서 몇 일 전에 당신 앞으로 온 편지를 꺼내 펼칩니다.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 내용을 거의 다 외워버린 편지는 구겨지다 못해 너덜거립니다.
핸드아웃 [편지]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몇 번, 몇십 번을 반복해 읽어 내용을 외울 지경이 된 편지를 또다시 꺼내들었다.) ...볼 수 있는 걸까.
...
치료제가 완성된 후인 이듬해 1월,
연합정부는 파이로젠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전면적으로 공표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갖기도 잠시,
사람들은 또 한번의 절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치료제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를 투여받은 후
완전한 인간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치료제를 투여했음에도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비활성화 상태로 몸 안에 계속 남아있는 사람들 또한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바이러스에서 돌연변이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은 치료제를 조금씩 바꿔나가며 계속해서 실험을 거듭했지만
불특정 다수에 대해 치료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는지에 대한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습니다.
만들어져야 하는 치료제의 양에 비해 공장과 자원은 부족했습니다.
또한 치료제를 투여한다고 무작정 감염자들이 인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니,
결국 정부는 그들을 수용소에 모은 후
생존자들에 의해 신원이 확인된 이들에게 순차적으로 치료제를 투여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연합정부는 당신의 말에 따라 노트의 작성자인 엘리엇을 찾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알다시피 정부는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요.
멸망 이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세계는 평화로웠던 시절보다 모든 것이 몇배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당신 역시 세계를 재건하기 위한 생존자의 일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정부는 수용소의 좀비들 중 엘리엇을 찾았고,
몇 달을 기다려야하는 다른 감염자들과 다르게
엘리엇에게는 1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치료제의 투여가 결정된 것입니다.
이곳 아리마테아 병원은 당신이 사는 곳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지대 외곽에 위치한 병원입니다.
좀비 사태 이후 폐병원이 된 곳을 건물 통째로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들을 위한 시설로 쓰고 있으니
병원보단 수용소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와 함께 본인확인을 거치고 접수를 마친 당신은
엘리엇이 있다는 7층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감염자들이 입원하고 생활하는 병동은 외부의 출입이 차단 된 폐쇄병동인지라,
병동 앞 면회실에선 당신을 포함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저 안에 있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긴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 11월 14일 오후 12시 50분 ]
정오를 넘기고 오후 1시에 가까워질 때,
당신은 비로소 직원이 당신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네. (답하며 직원에게 다가간다.)
짧은 복도를 지나, 당신은 굳게 닫힌 철문 앞에 도착합니다.
직원이 카드를 찍자 문이 열리며 병동의 모습이 보이네요.
중앙 스테이션을 주위를 둘러싸는 병실들과 처치실, 면회실, 심지어 협소하지만 ‘환자들’을 위한 휴게공간…
겉보기에 이곳은 평범한 병동입니다.
이런 곳에서 엘리엇이 지내고 있는걸까요.
주변을 잠시 둘러보지만,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직원은 빠른 발걸음으로 당신을 한 진료실로 안내합니다.
진료실은 한쪽 벽 가운데 널찍한 유리창이 있는 것만 빼면 평범합니다.
크레센티, 지능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지능
기준치: 85/42/17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방안에 이런 구조물이라니 특이하네요.
반대쪽 방은 지금 불이 꺼져 있습니다.
당신이 자리에 앉자 손에 든 차트를 확인한 의사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안녕하세요, 크레센티 님. 저는 72병동 담당의사 레나 리센 입니다. 엘리엇 씨의 보호자, 맞으시죠. 이미dna나 지문 등으로 본인 확인을 거쳤지만… 잠깐 확인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는 책상 옆에있는 리모콘의 한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자 얼마 후,
쾅!!!!!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불이 켜진 유리창 너머에는 엘리엇이 서 있습니다.
헤어진 후 처음 보는 엘리엇은 당신이 기억하던 엘리엇이던가요?
그는 바이러스의 감염자, 좀비잖아요.
창문 너머에서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창과 맟닿은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뭉개집니다.
환자복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유리창 너머에 서 있는 엘리엇.
당신을 알아본걸까요, 아니면 그저 빛에 반응한걸까요.
엷은 보랏빛 눈동자의 동공은 희게 번뜩입니다.
레나:......엘리엇 씨가 맞습니까?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아. (유리창 너머에 피를 흘리며 선 엘리엇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몇 초 늦게 답했다.) 레이 ... 엘리엇이 맞아요.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렇겠지, 그러는 게 맞는데 ...)
그는 당신의 대답을 듣고 차트에 무언가를 적고, 다시금 버튼을 누릅니다.
불이 꺼지자 좀비, 아니, 엘리엇이 어둠속으로 삼켜지고,
새카만 유리창엔 당신의 표정이 반사됩니다.
레나:보시다시피 지금 상태에선 면회가 불가능합니다. 면회가 허용되는 건 3단계부터 입니다. 이미 편지에 동봉된 안내자료를 보셨겠지만...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치료제는 어제 오후 1시에 투여된 상태입니다. 엘리엇 씨는 현재 2단계의 상태이고요.
치료제를 처음 투여받은 환자, 그러니까 좀비는 100시간동안 1단계부터 4단계를 거치며 서서히 인간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00시간 후 5단계가 되어 완치판정을 받을 경우 퇴원이 가능합니다.
첫 치료 시 완치율은 대략 30%정도이고,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면 이곳 병원에 격리된 채 추가적인 치료를 받게 됩니다.
완치된 환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좀비일때는 의식도 기억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레나:치료제가 투여되며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죠. 현재 연구가 이루어 지고 있지만 학자들은 바이러스 감염 후 좀비가 될 때 파이로젠 바이러스가 뇌에 침입한 결과로 기억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물 부작용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아직 모르지만 3,4단계의 환자들이 이따끔 액팅 아웃, 그러니까...발작을 하며 공격성을 보이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경우 안정제를 투여한 후 독방에 얼마동안 격리하는데 그러면 수 시간 후에 괜찮아지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드릴 설명은 여기까지 입니다. 질문이 있으십니까? 최대한 대답해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대기 인원이 많아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반사된 유리창에 비친 멍한 표정을 응시하다가 애써 웃음짓는 얼굴을 만들어보였다.) 음. (들은 설명을 천천히 곱씹다가 고개를 젓는다.) 충분했어요. 설명 감사합니다.
마침 짧은 노크 소리가 들리고 아까 그 직원이 들어와 말합니다.
직원: 선생님, 대기 환자가 많습니다.
레나:아마 내일도 같은 시간에 방문해주시면 면회가 가능할 것입니다. … 행운을 빕니다.
짧은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가자 직원은 당신을 출구로 안내합니다.
그가 입구 옆에 출입 카드를 찍자 병동의 자동문이 열리고,
당신을 앞서 밖으로 나간 요원이 다음 차례의 대기자를 호명하는 바로 그 순간,
거기 비켜!!!!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당신의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가 당신을 밀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크레센티, 민첩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민첩
기준치: 80/40/16
굴림: 78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은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벽을 짚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보균자가 탈출했다!!
72병동 환자 탈출, 지원 바란다!!
당신을 밀치고 병동을 뛰쳐나간 건 환자복을 입은 ‘보균자’ 입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비틀거리면서도 날쌘 걸음으로 복도를 달리는 그를 피해 복도의 대기자들이 홍해처럼 갈라집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지원 요청을 듣고 반대쪽 복도에서 나타난 보안요원의 손에 붙잡히고,
곧이어 병동에서 달려온 다른 직원들에 의해 사지에 억제대가 채워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5분도 안 되는 찰나에 이루어지고,
짧은 탈출이 끝난 그는 장정들의 손에 들려 병동 안으로 짐짝처럼 운반됩니다.
보균자: 나가게 해줘, 나는 인간이야, 갇히기 싫어, 나가게 해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는 무거운 철문 뒤로 사라지고, 복도엔 무거운 적막이 감돕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직원은 다음 차례의 보호자를 호명하고,
남은 대기자들은 다시금 순서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마 여기 있는 모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이성 판정이... 가능합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감소 없음.
바이러스에서 완치되지 못한다면,
내 소중한 누군가는 평생을 저 안에 갇혀 지내야 할 것이라는 것을요.
과연 당신의 엘리엇은 당신 곁으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길의 하늘엔 꼭 당신의 마음처럼 먹구름이 가득 껴 있습니다.
...
[ 11월 14일 오후 3시 40분 ]
집으로 돌아온 당신은 거실의 소파에 쓰러지듯 눕습니다.
하루 종일 날이 흐린 탓에 불을 키지 않은 널찍한 거실은 어둑합니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집은 연합정부가 생존자들에게 제공한 안전지대 안의 아파트,
그 중에서도 제일 넓고 좋은 축에 드는 곳입니다.
4인 이상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넓은 아파트에서 당신은 혼자 살고 있는 것이나,
매달 나오는 지원금 같은 것…
멸망 이후의 이 과도기에 당신은 부족한 것이 없게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야 노트를 완성한 것은 엘리엇이지만 노트를 가져온 것은 당신이니까요.
그래봤자, 엘리엇이 곁에 없다면 이런 모든 것들은 무슨 상관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집안을 둘러보니 정돈되지 못한 부분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엘리엇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느라 집안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100시간이 지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72시간.
희망을 놓지 말아야죠, 그게 설령 30%의 희망일지라도.
언젠가 엘리엇이 당신 곁으로 돌아올 때, 이런 엉망인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순 없으니까요.
우선 너저분한 거실부터 치워봅시다.
소파 위에 켜켜히 쌓인 겉옷들, 탁자 위의 다 마신 컵들, 구석구석 먼지들도 가득이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함께 있었다면. (이런 생각 하지 않기로 했잖아, 크레센티. 몇 년이나 노력했는데 이 큰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는 건 아직도 익숙해지지 못해서, ...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돌아올 곳은 만들어 두어야지.)
크레센티, 손놀림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손놀림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옷들을 차곡차곡 개서 걸고, 컵들을 치우고, 먼지까지 닦아내니 너저분하던 거실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완벽해요!
그 다음은 침실입니다.
매일 잠을 자는 곳이니 그만큼 정돈되지 못하는 공간이죠.
구겨진 이불과 카펫, 책들과 서류들이 널부러진 책상, 구석에 대충 던져놓은 양말 등…
그동안 왜 치울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손놀림
기준치: 70/35/14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살짝 삐딱한 이불과 카펫,
몇 권의 책이나 서류는 그대로 올려져 있는 책상,
짝이 맞지 않는 양말….
뭐, 안 한 것보단 나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주방입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정리했는지 기억 조차 나지 않는 냉장고와 며칠은 밀린 설거지거리,
꽉 찬 쓰레기통,
당장 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손놀림
기준치: 70/35/14
굴림: 1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능숙한 손길로 그릇들을 한데 모아 씻고,
냉장고의 오래된 음식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세탁기까지 돌렸습니다.
주방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청소를 끝내고 마무리로 환기를 시키기 위해 거실의 창문을 엽니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깨끗해진 집을 돌아보자 뿌듯하고 또…
힘이 쭉 빠지며 배가 고파옵니다.
아까 냉장고를 정리하기도 했고, 마침 저녁 시간이네요.
장을 보러 갈까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손을 씻고, 두 손으로 제 뺨을 챱 친다.) 살아있어야지. 돌아올 때까지. 그러니까 ... (빈 냉장고를 보다가) 장을 보러 가자.
장바구니를 들고 얼마간을 걸어 아파트 근처에 위치한 마트로 향합니다.
길목에 위치한 상가들은 문을 닫은 곳 보다 연 곳이 더 많습니다.
재정비를 거쳐 곧 오픈을 앞두고 있다는 가게들도 보여요.
아침에 들렀던 안전지대 외곽에선 병원을 제외하곤 아무 것도 없었는데요.
거주 구역을 주변으로 상권이 발달하는 것은 당연한걸까요.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마트 안엔 장을 보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어느 코너로 가볼까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고민...)
▶:고민된다면... 다이스를 굴려도 좋겠습니다.
아자아자!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토마토와 오이와 양상추와 달걀을 사고) .. (머스타드 소스와 슬라이스햄과 치즈와... ) ... (식빵과 달걀도.)
오늘은 ... 보고 왔으니까. (시리얼을 사서 간단히 먹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샌드위치의 재료를 골랐습니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합니다.
조촐한 저녁상이지만 이렇게 제대로 끼니를 챙긴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손재주 or 행운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2
기준치: 30/15/6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오랜만에 만들었던 탓일까요...
조금 엉성합니다.
맛은... 어떤가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냠..)
... (엉성하게 만든 것 치고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재료 덕분일까.)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재료의 조합이긴 합니다.
냠냠...
직접 만든 샌드위치를 먹고 그릇을 치우고 있자니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집안입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간간히 메꾸는 것은 윗집에서 들리는 티비 소리,
옆집 가족들의 대화 소리,
웃음 소리…..
불이 켜진 주방을 제외하고 집 안은 어둡습니다.
식탁에서 일어나 거실으로 한 발만 내딛으면
그 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無)의 공간일 것만 같아요.
이 넓은 공간과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호젓한 외로움에,
당신은 그릇을 치우고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 눕습니다.
잠이 들기 전 언젠가 이스트베일의 마을에서 누웠던 침대가 문득 떠오르네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잠시 잠을 청한 그곳의 낡은 침대 위에서
그 때 우리가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엘리엇은 나를 어떤 표정으로 바라보았는지…
엘리엇과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보면
생생하게 기억나는 순간들도 있지만 꽤나 옅어진 기억들도 많습니다.
내일 엘리엇을 만난다면 기억이 돌아오는건 당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잠에 듭니다.
...
[ 11월 15일 오후 1시 ]
다음 날 당신은 시간에 맞춰 병동으로 도착하였습니다.
어제와 같은 직원이 오늘은 당신을 사무실이 아닌,
엘리엇이 있다는 병실로 안내합니다.
직원: 면회시간은 오후 다섯 시 까지입니다.
작은 병실 안은 낮인데도 커튼을 쳐 놓아 어둑합니다.
유일한 광원인 정면의 tv에선 대기실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뉴스가 틀어져 있고,
작은 화장실과 냉장고, 벽에 붙은 서랍장, 그리고 방 안을 제일 크게 차지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엘리엇.
그는 멍한 표정으로 tv화면을 바라보다 정확히 당신 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엘리엇 린드그렌:레티...?
….헤어진 후 이렇게 만나는 것은 몇년 만인가요.
가까이서 본 엘리엇은 당신이 기억하던 마지막 모습보다 훨씬 마르고 수척한 모습입니다.
좀비로 변하고 난 후 생긴 상처일지, 몸 군데군데엔 반창고가 붙여져 있습니다.
크레센티, 관찰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문득 이 작은 방의 천장에 cctv가 달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고보니 면회 전 서명했던 동의서에
감염자와 일반인의 면회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감시카메라가 있는 방에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이런 것이었나 보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멀찌감치 서서 침묵하다가 몇 걸음 다가간다.) 내가 레티일 것 같아?
엘리엇 린드그렌:(다가오는 모습을 보곤 생각에 잠긴 듯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 모르겠어. 이곳의 직원이 네 이름을 말해줬지만 그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어. 그건 네가 아닌가?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모르겠다고.) 기억상실 증상을 보일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이구나. 레티는 내가 맞지만 ... 모르겠어. 여기 와서는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거든.
엘리엇 린드그렌:그래, 그냥 감이야. (슬 웃고는) 기억 중간중간에 먹이 칠해진 것 같아. 바이러스의 후유증인지, 치료제의 부작용인지...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좋아했고 싫어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치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야. (눈꺼풀이 느리게 꿈뻑였다. 귓가에 맴도는 그리운 듯 낯선 목소리는 기억을 잃지 않은 너도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힘들다면 잊어버리라면서 먼저 잊어버리면 어떡해. 나는 엘리엇 린드그렌에게 잊어버려도 괜찮다는 말, 한 적 없어. (잊고자 해서 잊어버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괜히 탓하는 듯한 말을 해 보고는) 그러니까 ... (약간 불안한 듯한 목소리가 새었다.) 기억 찾아야 해, 레이.
이대로 잃어버리고 되찾지 못하면 그때는 (짧은 침묵.) 진심으로 ... 원망할 거야.
엘리엇 린드그렌:(그런 말도 했던가. 흘러가듯 중얼거리며 입가를 매만졌다.) 정말로 잊었다면 지금쯤 이곳에 있지도 못했겠네. (부러 농조로 말하곤 어깨를 으쓱였으나 기억의 빈 자리에서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었으나 의연한 표정이었다. 이어진 말에 미간만 잠깐 좁혀졌다가 풀렸고) 다른 사람들은 6명이 한 방을 쓴다고 하더군. 내가 특별 취급을 받는 건 네 영향인가?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직접 알아보라고 하고 싶지만 (말꼬리를 길게 끌었다.) ... 어렵겠지? 내 영향은 아니야. 레이 영향이겠지. 바이러스 치료제의 제조 공식을 레이가 적었으니까. (느릿하게 다가간다.) 있잖아, 레이.
엘리엇 린드그렌:알아볼 수 있었다면 여기에 갇혀지내지도 않았겠지. 감시 받는 일도 없을 거고... (치료제를? 그래, 그렇구나. 크게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도 아니었겠지만 담담한 어조로 받아쳤다. 그밖에 묻고 싶은 것도 많았으나 돌연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기울였다. ) ... 왜?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손 잡아줘. (천천히 한 손을 내민다.) ... 안 돼?
엘리엇 린드그렌:어리광부리긴... (이래서야 기억을 잃은 쪽이 누구인지. 그렇지만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십대후반, 이십대초반인 여자아이의 목소리였으니까. 네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껴졌었고 그것이 서로에게 해당된다면 아마 불안했을테지.) ... 이리와.
(그래서 네가 있는 쪽으로 팔을 뻗었으나,)
그 때 갑자기 엘리엇의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며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엘리엇 린드그렌:아, 기억났어. ….나는 괴물이야. 나는 인간들의 살을 뜯어 먹으며 살아왔어. 그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네.
한 줌의 이성도 없이, 추한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왜 인간으로서 죽지 못했지?
몸을 웅크리던 엘리엇은
일순간 고개를 홱, 치켜올리고 당신에게 달려듭니다.
쿵!! 하고 벽에 등이 부딪히고
곧바로 엘리엇의 억센 손아귀가 당신의 목을 조여옵니다.
엘리엇 린드그렌:
SAN Roll
기준치: 15/7/3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엘리엇, 이성 -2
아... 이성 판정이 가능합니다...
근력 판정을 하면 엘리엇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레이. (제 목을 조여오는 손 위로 손을 겹쳐올린다.)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크레센티, 이성 -1.
당신을 노려보는 붉게 충혈된 흰 눈동자에서 흐르는건 눈물입니다.
언젠가 본적이 있는 그 살기어린 눈빛에 가슴이 섬짓합니다.
왜 그가 울고있는 걸까요.
엘리엇 린드그렌:절대 그렇게는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손만 겹쳐올린 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끝내주었어야 했을까?
내가 ... 잘못한 거야?
목을 조르는 엘리엇의 손길을 뿌려치지 못하고 숨이 부족해질 때 쯤,
방문을 열고 보안요원들과 의료진들이 방 안으로 들어옵니다.
보안요원이 당신에게서 엘리엇을 떼어내고 억제대를 채우는 사이
직원 중 한 명이 당신을 방 밖으로 내보냅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직원: 괜찮으신가요? 잠시 나가계셔야 겠습니다.
당신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문 밖으로 밀려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얼추 정리된 듯,
문을 열고 나온 레나 리센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어제 말씀 드렸던 상황입니다. 진정제를 주사했으니 곧 괜찮아 지겠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상황이 있으면 최소 24시간동안 면회가 제한됩니다.
따라서 내일은 면회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상태가 안정되는 것을 지켜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야겠군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내가 잘못한 걸까? 잠깐이라도, 다시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꿔서 레이가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거야? 왜 인간으로서 죽지 못했냐니. 그건 ...) ...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내가 제대로 끝내지 못해서. 그렇게 살아남는 건 싫어할 거라고, 알았으면서도 레이를 살리고자 해서 ...)
... (내 마음대로 해서 벌 받은 거야. 레이가 괴로워할 거라고 생각했잖아. 각오했는데 ... 왜 마음이 아릴까?)
...
...
[ 11월 15일 오후 5시 20분 ]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당신은 소파에 앉아 아까의 놀란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날이 흐린 탓에 불을 켜지 않은 집 안은 어둑합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엘리엇과 대화를 나누던 것은 그저 찰나의 환상같이 느껴집니다.
닫힌 문의 틈새에서 새어나오던 엘리엇의 비명소리와 의료진들의 급박한 대화 소리….
소란스러웠던 병동과 다르게 어제와 같은 적막함이 집 안에 가득 차올라 마치 그 속에서 익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때 소파의 한 구석에 올려져 있는 tv의 리모콘이 보입니다.
당신이 tv를 틀자 최초로 치료제에 의해 인간으로 돌아온 00씨에 대한 인터뷰가 나오네요.
앵커: .....그럼 다음 질문을 해볼게요. 선생님이 파이로젠 바이러스에서 완치하실 수 있게 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완치자: ...치료를 받을 때 제 아내가 매일같이 병원을 찾아왔어요. 옛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여주면서 제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해주고, 저를 지지해줬어요.
아내의 정성이 통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제가 인간이라는 확신이 들고 아내 곁으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를 믿을 수 없어요, 서서히 시력이 돌아오면서 아내의 얼굴이 처음으로 다시 또렷하게 보였던 그 순간…
제 아내가 없었으면 저는 아직도 병원에서 나오지 못 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앉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화면엔 잔잔한 나레이션과 함께 감성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당신은그런 티비 화면을 뜷어져러 바라보았습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 기억이 되돌아 오도록 도와주는 것….
어쩌면 이것이 엘리엇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엘리엇의 기억이 돌아올 만한 물건은, 이 집에 있는 것은 엘리엇이 작성하던 낡은 노트 한 권 뿐입니다.
하지만 어제 엘리엇은 자기가 노트를 작성하던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었죠.
엘리엇에게 중요한, 엘리엇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 있을 곳, 엘리엇이 살던 집.
당신은 인터넷으로 엘리엇의 집 주소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지도에서 둘이서 살던 도시를 클릭하자 작은 안내 메세지가 뜨네요.
[해당 구역은 오염구역이므로 일반인들은 출입을 삼가해 주세요.]
...좀비 사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기 시작한 이후
세계는 가장 크게 세가지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캘버리 교도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간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전구역],
좀비들을 모두 ‘청소’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살지 않는 빈 도시인 [청결구역],
그리고 여전히 좀비들이 남아있는 [오염구역].
당신은 엘리엇과 헤어진 이후 쭉 안전구역에서 생활했지만,
아직 바깥엔 좀비들이 거리에 돌아다니는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왜 잊고 살았을까요.
엘리엇을 위해서 당신은 다시 한 번 좀비들이 있을지도 모르는 도시로 향할 건가요?
어쩌면 최악의 경우엔 당신이 다시 물릴지도 모르죠.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물리면 ...) ... 어쩔 수 없지. (물리면 물리는 거고.)
당신은 창고에서 낡고 헤진 배낭을 꺼냅니다.
엘리엇와 함께 안전지대를 향해 떠돌던 시절에 사용했던 배낭은 여전히 튼튼하네요.
배낭 안엔 그때 사용했던 물건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오래된 라디오, 찌그러진 생수병, 유통기한이 지난 약상자 등…
마지막으로 엘리엇과 함께 펼쳐보던 지도를 가방에 넣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당신은 내일의 여행을 생각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엘리엇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한 여행을요.
...
[ 11월 16일 오전 9시 ]
다음날 아침 당신은 일찍이 도시의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집은 당신이 있는 도시의 안전지대로부터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또 얼마간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야, 당신과 엘리엇은 살아남기 위해 원래 살던 곳을 버리고 긴긴 여행을 했으니까요.
—그 다음 날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며칠간 계속해 흐린 날씨가 지속된 반면, 오늘 내일은 고기압으로 맑은 날씨가 계속될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선 오늘 저녁과 밤 사이로 짧게 비가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
오랜만에 듣는 라디오 방송이네요.
당신은 가만히 눈을 감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들을 듣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내리고 이제 버스 안의 승객은 당신뿐입니다.
덜컹이는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보면 버스가 도시를 빠져나가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도로에 군인들 태운 군용 트럭이 버스를 지나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긴 긴 도로를 달려 마침내 종점의 버스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당신이 버스에서 내리자, 버스기사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버스기사: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오염 구역 인데요. 알고 가는 겁니까? 몰랐다면 다시 태워줄테니 돌아가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알고 있어요. 염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선다. 안전구역에 도달했던 날 이후로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건 처음이었다.)
버스기사: 그렇다면야 뭐, 조심이나 하세요. 좀비한테 물리지나 말고.
그는 당신의 대답을 듣더니 어깨를 으쓱하고 운전대를 돌립니다.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방향을 돌린 버스는 곧 지평선 너머의 점으로 사라집니다.
당신은 버스가 떠난 쪽을 잠시 바라보다 지도를 보며 버스가 향한 반대쪽인 서쪽을 향해 걷습니다.
...
[ 11월 16일 오후 1시 ]
어제와 다르게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 햇빛이 쨍하게 비치고, 아스팔트에선 더운 열기가 올라옵니다.
이렇게 도로 위를 걸으니 3년 전, 엘리엇과 함께하던 시간들이 풍경에 겹쳐 떠오릅니다.
낮에도 밤에도 지도를 보고 길 위를 걸으며 하루하루를 생존해 나갔습니다.
힘들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둘은 함께였는데요.
그때를 떠올리면서 한 시간 정도를 걸으면, 마침내 당신은 도시의 입구에 도착합니다.
간판을 보면 [여기서부터 —— 입니다.] 라고,
오염구역임을 나타내는 빨간 해골 마크가 도시의 이름을 가리고 있네요.
도시 안으로 들어가 얼마간 걸으니 곧 익숙한 거리와 풍경이 보입니다.
도시의 뼈대는 당신이 기억하던 것과 같지만 5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 곳은 적막하고 황량합니다.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걷지만, 이 텅 빈 도시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는 당신 뿐이에요.
당신의 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질때 쯤, 눈 앞에 드디어 익숙한 집 한채가 보입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
... 아무도 없겠지.
아무도 없겠죠.
이곳은 오염구역이니까요.
안으로 들어가볼까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근처에서 좀비를 피하느라 한참 고생했었는데, ... 이 도시에 제 발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어.)
(문이 잠겨있지는 않을까? 열어본다.)
5년만에 방문하는 엘리엇의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바닥의 쓰레기들과 망가진 내부는 생존자들이 다녀간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런 흔적들마저 두꺼운 먼지에 덮여있는 게, 마치 이 안에 5년이라는 시간이 고여 있는 것 같아요.
주방과 이어진 거실, 침실서재.
가구들과 벽지…
모든 게 당신이 기억하던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마음대로 들어온 걸 알면 싫어하려나. (거실로 향한다.)
...
당신이 거실에서 집안을 둘러보던 그때,
끼이이익-하며,
경첩의 마찰 소리가 뒤에서 들려 옵니다.
……..아까 들어올 때 문을 닫고 들어왔었었나요?
쿵, 쾅, 하고 심장이 세차게 뜁니다.
이 곳은 오염구역, 언제든 좀비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입니다.
아무도 없겠죠. 사람은요.
싸워야 할까요, 아님 도망갈까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출구는 막혔을 텐데. ... 뒤를 돌아본다.)
마른침을 넘기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면 그곳엔…
야옹
고양이: 야옹-
...고양이네요.
녀석은 당신을 보고도 경계하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와 다리에 몸을 부빕니다.
오렌지색 털은 부드럽고,
목에는 토비, 라는 작은 이름표가 걸려 있는게
원래는 사람 손에 키워졌나 봅니다.
파이로젠 바이러스는 인간들만 감염되었고 좀비는 동물들을 건드리지 않았으니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인간에게 잔뜩 애교를 부리던 녀석은 이내 소파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너 ... 어떻게 된 거야. 혼자 살았어? (소파 위로 올라간 고양이를 귀여워하다가.) 이름이... 토비구나. 데려가고 싶지만, 그러면 네가 집에 혼자 있게 될 수도 있어서 ... (어느새 안전구역의 그 아파트를 집이라 칭하는 데 익숙해졌음을 느끼며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들어가는 게 싫거든. ... 그곳은 혼자 있기에는 너무 넓고, 쓸쓸해.
그러니까 ... 음, 잘 모르겠네. 너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고양이의 말을 하거나. ... 그렇지?
고양이: 애오옹~? (소파 위에 올라 앞발의 털을 정리하다가 크레센티의 주위를 맴돈다.) 애옹?
▶:(크레센티의 발 앞에서 발라당)
아..
고양이: (발라당)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발라당 하는 고양이를 본다.) 안 돼. 나는 ... 나를 살려두는 것도 어려워, 아직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아. 네가 고양이라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
...
(거실을 둘러본다.)
작은 생명조차 지금의 당신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5시 전엔 이 집에서 떠나야할테니
이만 마저 집을 둘러봅니다.
거실 바닥엔 쓰레기와, 오래 된 발자국들이 남아 있습니다.
창문에선 반쯤 쳐진 커튼 너머로 햇빛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와 긴 그림자를 남깁니다.
거실 한쪽에 놓인 것은 긴 소파, 그 앞에 놓인 긴 수납장 위에는 먼지 쌓인 액자가 놓여 있습니다. 바닥 한 구석에는 낡은 신문도 보여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액자를 살펴본다.)
5년도 더 된 처음으로 함께 갔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겨울 바다 앞에서 추위로 발개진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웃는 당신과 엘리엇가 사진 속에 담겨있어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또 가주겠다고 했으면서.
미워하지 않으려 했는데 ... 레이. (액자에서 사진만 쏙 빼내어 챙기고는 낡은 신문을 살핀다.)
맨 위에 [속보-정체 불명의 바이러스 전 세계 창궐] 라는 헤드라인이 큼직한 글씨로 적혀있고,
아래로는 좀비사태에 대한 뉴스 기사가 적혀 있네요.
오래 전 신문이라 글자들이 드문드문 번지고 닳아 있습니다.
크레센티, 관찰 or 자료조사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전부 다 읽을 순 없지만 그나마 선명한 문단 하나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문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신문도 가지고 갈까. (이걸 왜 가지고 왔냐고 할 것 같기도 해.) ... 보류.
(신문을 내려두고 가까이 보이는 침실로 들어간다.)
급하게 짐을 싼 흔적이 남아있는 침실엔 곳곳에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고, 깨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스산합니다.
옷장의 문짝은 거의 떨어져나갈 듯 삐걱이고, 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침대 옆의 탁자 위에 작은 오르골이 올려져 있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남의 방을 뒤적이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야. (옷장을 살펴본다.) 그래도 안쪽에 좀비가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지.
밖으로 나와서 그런지, 혼잣말을 많이 하게 돼. 옆에 레이가 없는데도 ...
혼자 다닐 때는 혼잣말을 많이 했거든. 들어줄 사람은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금방 ... 정신을 놓게 될까봐 그랬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으니까 ...
좀비와 대화를 할 수는 없잖아. (옷장의 문짝이 삐걱인다.) 아, ... 떨어지면 방패로 쓸 수도 있겠는걸.
크레센티, 행운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기준치: 30/15/6
굴림: 55
판정결과: 실패
생존자들이 다녀간 후라 옷장의 옷이 남아있는게 없고,
그나마 있는 것은 걸레짝 같이 상태가 나쁜 것들이에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이건 머리 리본으로도 못 쓰겠네. (상태 나쁜 옷들을 내려놓고 침대 옆 탁자로 향했다.)
오르골? (오르골을 들여다본다.)
이 오르골은 사실...
당신이 엘리엇의 생일에 선물했던 오르골입니다.
탁자의 서랍을 열 어보니 오르골을 포장했던 상자 또한 고이 보관되어 있네요.
오르골의 뚜껑을 열자 작은 별 변주곡이 흘러나와요
다시 한번 이 선물을 건네준다면 엘리엇은 당신과 함께 보낸 생일을 기억할까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가지고 있었구나.
상자까지... (상자를 꺼내본다. 이건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르골을 가방에 넣는다.) 안 받으면 다시 가지고 갈 거야. (조금 툴툴대는 투로 말했다.)
당신은 오르골을 챙겼습니다.
기억을 찾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서재로 향한다.)
문고리가 뜯어져나간 서재 안에는 관리되지 않은 오래된 책들의 냄새가 방 안에 짙게 배어있고,
책상 위엔 책 대신 쓰레기들과 구겨진 종이들이 올려져있습니다.
서재의 책상 서랍들을 열어보던 당신은 서랍 맨 아랫칸에서 엘리엇의 카메라를 발견합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카메라? (익숙한 카메라를 들어 살펴본다.)
엘리엇이 사용하던 카메라 입니다.
카메라를 켜보자 엘리엇이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들이 남아있네요.
사진 속에는 5년 전 평화로운 도시의 거리,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당신의 뒷모습, 그리고…
이 서재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인 거리의 좀비들과 좀비들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찍혀있습니다.
...
서재도 적당히 둘러보았다고 생각했을 때 쯤,
크레센티, 관찰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음.. 고양이가 지나간 것 같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뒷모습은 언제 찍은 거야. (카메라도 챙기며..)
관찰력
기준치: 70/35/14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서재를 둘러보던 당신은 책장의 책들 사이에서 눈에 익은 노트를 발견합니다.
이건 엘리엇이 사용하던 다이어리네요.
펼쳐보면 5년 전의 시간엔 간단한 메모와 함께,
페이지들 사이사이엔 당신과 함께 본 연극이나 영화 티켓, 영수증, 브로슈어 등이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습니다.
다이어리 뒷부분의 노트엔 드문드문, 짧막한 일기 같은 글들이 적혀 있네요.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엔 언젠가 당신이 잠에 들기 전 그가 해주었던 말이 꾹꾹 눌러쓴 글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그 기억을 지니고 ... 살아가는 것도?
화내지 마, 레이 ... (다이어리를 가방에 넣는다.)
... 나는 그저, ...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물었다.)
...
...물건들을 얼추 챙기고 난 후 시계를 보니
5시가 되기 전까진 30분정도가 남았네요.
당신은 거실로 돌아와 소파의 먼지를 살짝 털어내고 그 위에 몸을 파묻듯이 앉습니다.
오후의 햇빛이 쏟아지는 거실은 고요하고 평화로워요.
이런 나른한 주말의 오후엔 엘리엇과 함께 소파에 나란히 앉아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서로에게 기대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저녁메뉴를 고민한다거나 하는, 그런 평화로운 시간들을 보냈었는데요.
소파에 앉아 방문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엘리엇이 저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100시간 후에 엘리엇이 사람으로 돌아온다면 이런 시간을, 또 보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때, 당신의 주머니에서 정적을 깨는 요란한 멜로디가 들립니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니 엘리엇이 있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전화를 받는다.)
직원: 안녕하세요, 크레센티 님. 금일 엘리엇씨의 상태가 다시 안정되어 내일, 어제와 같은 시간에 방문해주시면 면회가 가능 하실 것 같습니다.
...레나 리센의 말대로네요. 내일 5시에 100시간이 끝나게 됩니다.
이것들이 엘리엇이 돌아오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요.
시계를 보니 이제 5시가 가까워졌습니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가방을 챙겨 일어선다.)
언젠가 엘리엇과 함께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나와 왔던 길을 되돌아 갑니다.
오후의 햇빛은 아까와 다를 게 없는 텅 빈 거리에 긴 그림자를 만들어 냅니다.
그때,
골목을 걷던 당신은 문득 당신의 그림자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태양을 등지고 선 당신의 앞으로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는 유독 길고 흔들리는게,
마치 또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겹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생존자일까 하고 희망적으로 생각하기엔
실로 익숙하고 오랜만에 듣는 불쾌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등을 돌리면….
….
그 곳엔 좀비 한 마리가 희뿌연 눈을 번뜩이며 서있습니다.
크레센티, 민첩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은 좀비로부터 도망쳐 골목을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좀비는 여전히 당신을 쫓아옵니다.
괴성을 지르며 당신에게 달려오는 좀비는
딱, 딱 하며, 침과 피가 뒤섞인 이빨이 맞부딪힙니다.
번들거리는 희뿌연 눈동자에 당신의 뒷모습이 반사됩니다.
그 순간...
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끈질기네 ... ... 아.
하는 총성이 들리고 좀비는 피를 쏟으며 당신 위로 쓰러집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총성이 들린 쪽을 바라보니 중무장한 군인이 성큼성큼 골목 안으로 걸어들어오는게 보입니다.
그는 당신 옆에서 움찔거리는 좀비를 보더니 다시 한번 총을 들어 총알을 두어 발 더 머리에 발사하고,
시체를 발로 몇번 건드려본 후 가슴에 매달린 무전기에 대고 짧게 말합니다.
군인: 감염자 사살 완료.
그리고 그는 고글 너머의 눈동자로 당신을 내려다보며 말합니다.
군인: 물렸습니까?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혹시 모르니 제 손과 팔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는) 아니요.
당신을 몇번 살펴본 그는 무전기에다 대고 한 번 더 말합니다.
군인: 생존자, 민간인 발견. 안내하겠다.
따라오시죠.
그는 죽은 좀비를 다리 한 쪽을 잡은 채로 골목 밖으로 끌고 나가 도로 한 구석에 던져놓습니다.
당신의 앞길엔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함께 검붉은 발자국이 새겨집니다.
밖으로 나오니 도로에는 큼직한 군용 트럭과 몇 명의 군인들이 보이네요.
아까 이 곳으로 올 때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트럭입니다.
군인들은 당신을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눕니다.
크레센티, 듣기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군인들: ———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 시체는 청소반이 ———.
....저 사람은 감염이 —— —— 확실하고?
그런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까 ———.
...
대화를 마쳤는지 그들 중 한 사람이 당신에게 걸어와 말합니다.
군인: 감염자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검사를 좀 하겠습니다. 손을 좀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키트를 꺼냅니다.
저건, 안전지대 안의 ‘감염자’들을 가려낼 때 사용었던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회용 키트네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손을 내민다.)
잠시 후 당신이 비감염자임을 확인한 군인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군인: 민간인이 오염구역에서 뭘 하고 있던 겁니까. 태워드릴테니 안전지대까지 같이 가시죠.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네, 고맙습니다.
맨 뒷자리에 당신을 태운 트럭은 도시 몇 곳을 들린 후 도시를 떠납니다.
먼지 쌓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뻥 뜷린 도로와 황무지는 석양빛을 받아 온통 불타오르는 것만 같아요.
트럭 안은 덜컹이는 바퀴 소리와 화물칸의 좀비들이 이따끔 내는 기괴한 신음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합니다.
어느 새 지평선 아래로 해가 완전히 가라앉아 주위가 어두워지고, 트럭은 안전지대에 도착합니다.
군인들은 당신에게 사는 곳을 묻곤 당신을 적당한 곳에 내려주며 말합니다.
군인: 함부로 오염지역에 가지 마십시오, 위험합니다.
이내 트럭은 도시의 밤 속으로 사라집니다.
밤이 되어 쌀쌀해진 공기는 습하고 무겁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다 당신은 문득,
골목의 한 담벼락에 빼곡히 붙어 있는 크고 작은 종이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춥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가족을 찾고 있어요] [위와 같이 생긴 사람을 보신 분은 연락 주세요]
....따위의 글씨와 함께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대체로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 얼굴들과 절박함이 느껴지는 글씨들이 적힌 종이들은
어두운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밤바람에 쓸쓸히 팔락입니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엘리엇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것,
당신들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엔 훨씬 많다는 것을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사진 속 얼굴들을 살피다가 돌아서서 아파트로 향한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지만. (레이도 그것을 기뻐할까.)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던 당신의 이마에 톡, 하고 빗방울 하나가 떨어집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돌리지만 몇걸음도 가지 않아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옷에 스며들었던 피가 빗물에 씻겨내려갑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9시가 넘은 시간입니다.
젖은 옷을 벗어두고 샤워를 하고 나니 오랜만에 멀리 이동한 탓인지 피로가 몰려와요.
침대에 누운 당신은 금세 잠에 듭니다.
...눈을 뜬 당신은 더럽고 헤진 옷을 입고, 낮설지만 어딘가 눈에 익은 거리에 서 있습니다.
손에 쥔 쇠파이프에선 핏방울이 떨어지고, 당신의 발 밑엔 좀비들의 시체가 즐비합니다.
이 곳은 당신이 생존하며 지나쳐 온 수많은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때와 다르게 당신 곁에 엘리엇은 없네요.
이것이 과거이고 꿈 속이라면 엘리엇 또한 당신 곁에 있어야 하는데…
엘리엇를 찾기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또 다른 좀비 한 무리가 당신을 공격해옵니다.
팔과 다리가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손에 쥔 무기를 휘두릅니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좀비들이 쓰러지고, 허공엔 살점과 핏방울이 흩날립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당신을 공격하던 마지막 좀비가 무기에 맞아 천천히 쓰러질 때 당신은 깨닫습니다.
그 좀비는 바로 엘리엇이라는 것을요.
땅에 쓰러진 좀비, 아니 엘리엇일까요,
그는 당신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희미한 목소리로 당신을 부릅니다.
“레티….”
번쩍, 하고 꿈에서 깨어나면 방 안은 아직 어둡습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크게 몰아쉬고 나면,
아직도 생생한 손 끝의 감각에 양 손이 떨려옵니다.
지금 시간은 오전 5시, 아무래도 다시 잠들긴 그른 것 같아요.
▶:이성 판정... 가능합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감소 없습니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여니 새벽의 습하고 짙푸른 공기가 방안에 가득 찹니다.
차 한 잔을 타온 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도시의 건물들 너머로 마치 그때처럼 서서히 동이 터옵니다.
아침 햇살을 등지고 당신의 등을 밀었던 엘리엇.
유언처럼 마지막에 그가 당신에게 했던 말,
자네는 꼭 행복해져.
그 말이 저주처럼 남아
당신은 죽고 싶을만큼 괴로운 순간들에도 죽지 못한 채 지금까지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에겐 또다시 100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당신을 내게서 떠나보낼 100시간이 아닌,
당신이 내게 되돌아올 100시간.
사무치게 그리운 느낌에 가슴 한쪽이 저려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2시간.
언젠가 그와 바라보았던 아침 해를 바라보며 다짐합니다.
당신이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만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몇 번이고 꾼 꿈이야. 괜찮아.
... ... .... 괜찮아. 돌아올 거야.
(새벽 어스름에 가려진 얼굴, 얕게 숙인 고개 아래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괜찮아야 해...
... ... 나, 무서워. 레이... (손을 잡아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는 방 안에서 목소리가 허공을 떠돌았다.)
돌아오지 못하면, 그러면 어떡해? (더 버틸 자신이 없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무너지고 싶은 순간에도 이 날만을 기다리며 버텼어. 괜찮을 거라고,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
간절한 목소리가 허공을 맴돕니다.
이번에는, 엘리엇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전해질 수 있을까요.
...
[ 11월 17일 오전 8시 30분 ]
악몽으로 일찍 깬 탓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섭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올 땐 이 길을 함께 걸을 수 있을까요.
산책이라도 할 겸, 평소 다니던 길과 다른 길을 걸으니 처음 보는 꽃집베이커리를 발견합니다.
어쩌면 여기서 엘리엇에게 줄 선물을 사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뭐가 예쁘다고 선물을...
같은 생각이 든다면 베이커리에서 아침만 먹읍시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꽃집으로 들어간다.)
가게를 연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꽃들의 종류가 다양하진 않지만,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꽃들과 식물이 보이네요.
살짝 습한 공기에는 꽃과 식물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직원: 어서오세요! 어떤 꽃을 찾으시나요?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메리골드 꽃다발도 있나요?
직원: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렇게 말한 직원은
예쁘게 포장된 메리골드 꽃다발을 당신에게 건넵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감사합니다. (계산하고.. 나간다.)
직원: 또 오세요~
직원의 인사를 뒤로하고 가게를 나섭니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꽃다발을 안고 .. 베이커리는 다음에 가자.)
베이커리는 다음에 가기로 했습니다.
엘리엇을 위한 꽃다발과 엘리엇의 집에서 가져온 그의 물건들.
양손은 무겁지만 이걸 보고 기뻐할 엘리엇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그런데,
병원 앞으로 향하던 당신은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합니다.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피켓과 판넬, 확성기 같은 것을 들고 있네요.
크레센티, 민첩 판정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회피
기준치: 50/25/10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민첩
기준치: 80/40/16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횡단보도를 건너던 당신은 병원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에 부딪힙니다.
순간 중심을 잃었지만 다행히도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을 밀치고 지나간 사람들은 병원 앞에 모여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일제히 구호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시위대: 좀비는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괴물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거대하게 꿈틀대는 악의가 형상화 된 것 같습니다.
치료제가 개발되고,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그렇게만 된다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엘리엇이 설령 인간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가 이전처럼 인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좀비였던 엘리엇은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할까요.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병실의 문을 열면 그제처럼 방안의 침대에 앉아있는 엘리엇이 보입니다.
병실 안의 tv에선 아까 그 시위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고 있네요.
—감염자들을 위한 치료시설 중 하나인 아리마테아 병원 앞에서 오늘 아침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들은 파이로젠 바이러스에 대한 특별 입법안 중 4단계의 환자들이 제한적으로나마 시설 밖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신설 조항에 반대해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시위대는 해산되었지만 이 조항에 반대하는 자들이 많은 탓에 연합정부는 다른 시위가 열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당신이 들어온 것을 본 엘리엇은 리모콘으로 tv를 끕니다.
엘리엇 린드그렌:... ...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왔어?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한 손으로 눈 비비적...) 응.
(메리골드 꽃다발을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느리게 다가가서 엘리엇에게 내민다.)
엘리엇 린드그렌:(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을 뻗었다. 꽃다발을 받아들자 확연히 풍겨오는 꽃내음에 입꼬리를 끌어올렸고) 향기가 나더라니. 꽃가게에 들렸나보군.
(아까까지 보았던 뉴스를 곱씹었다.) ... 오는 길이 험했을텐데. 다치지는 않았고?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잘 피해서 왔어. 그건 ... 메리골드 꽃다발이고. ... 오늘은 손 잡아 줄 거야?
엘리엇 린드그렌:... 혼자서도 잘 하네, 이젠. 선물은 고맙게 받지. (여상히 웃으며 꽃다발을 침대 위로 올려두었다. 메리골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섭지 않나? 또 험한 꼴을 당하면 어떡하려고. 저번에도... 일부러 밀어내지 않았지.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벌써 열아홉 살인걸. ... 험한 꼴은, 글쎄. 그런 것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많아서. (시선을 메리골드 꽃다발을 향해 돌렸다가 다시 엘리엇을 마주했다.)
... 밀어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 싫어?
엘리엇 린드그렌:그거 믿음직스럽네. 내가 없어도 괜찮겠어. (부러 농조로 이야기하곤 소리 없이 웃었다. 내린 시선이 손바닥이 있을 곳을 향했다.) 레티. 대략 한 시간 후에 내가 이곳에 남을지, 자네와 함께 떠날 수 있을지 결정돼. 자네는 내가 설령 이곳에서 나가게 된다고 해도 우리가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고 봐?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 자네는 나를 인간으로, 예전의 나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예전처럼? (엘리엇의 집에서 가지고 온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들다가.. 오르골을 한 번 돌려본다.)
똑같네. 태연한 얼굴로 그런 소리나 하는 건.
레이는 ... 레이를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라도 해? 왜 그런 걸 묻는 거야?
엘리엇 린드그렌:(오르골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자 무덤하던 표정에 일순 동요가 일었다.) 위험한 곳을 다녀왔구나. 조심해야지, 어떻게 살렸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네게 인정받지 못하면 나를 인간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리고...
... 혹여 다시 너를 해치는 날이 올까봐. 내 상태는 아직도 불안해. 알잖아. 이런 불확정 요소를 곁에 둘 수 있겠어?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어떻게 살렸는데. ... ... 어떻게 기다렸는데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냐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여기에 와 있을 것 같아? (무언가 꾹 누르듯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나를 해치는 날이 올까 봐? ... 그런 걱정은 필요 없어. 그럴 일 없게 할 거야, 할 수 있을 거야. ... 그러니 불확정 요소 같은 말은 하지 마.
엘리엇 린드그렌:확신할 수 있어? 불안하잖아, 너도. 그러니 묻지 않아도 될 것까지 끊임없이 내 의견을 물어.
혼자가 외로운 것과 위험을 감수하는 건 별개의 일이지. 네가 앞으로도 밀어내지 않을 생각이라면 두 번의 기회는 없어. 그래도 괜찮다면... (숨을 들이키고 길게 내뱉는다. 보이지 않는 두 눈을 꾹 감았고 위를 향한 손바닥을 내밀었다.)
... 그래, 잡아줘.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불안할 수밖에. 레이가 자꾸만 나를 두고 갈 것처럼 굴잖아. 누구처럼 두고 어디 안 가겠다고 했으면서. (내밀어진 손 위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잡았다.) 거짓말쟁이. 또 밀어내지도 않았는데 떠나려 들면 다음에는 안 믿을 거야.
... 항상, 밀어내려하는 건 레이잖아 ...
엘리엇 린드그렌:벌써 열아홉 살이라고 할 땐 언제고. 아직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해? 포도주스도 곧 끝나는데 말야.
(맞잡은 손에 약하게 힘을 주었으나) 네가 밀어내지 않으니 내가 밀어내는 건 당연하지. 내게서 총까지 빼앗을 정도면서 누가 네게 해를 입히는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기만 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면 같이 있긴 힘들겠는데. (잡은 손을 슬쩍 당겼다.)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필요해. 또 그러면 다음에는 피할 테니까, ... 같이 가. 레이라서 가만히 있어준 거야.
...
삑, 삑, 삑—….
그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책상의 전자 시계에서 100시간의 종료를 고하는 알람이 울립니다.
겉보기에 엘리엇은 아무런 변화가 일어 난 것 같지 않아 보여요.
얼마 후 병실로 레나 리센이 들어와 당신에게 말합니다.
레나:시간이 됐군요. 몇가지 검사를 할 테니 잠깐 나가 계시겠습니까?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머뭇거리다가 손을 놓았다.) ... 네.
...
병실에서 나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문 앞에 선 엘리엇이 당신을 보며 웃고 있습니다.
엘리엇 린드그렌:... 조금씩 자네가 보이기 시작했어. 그리운 보랏빛이…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 레이...
엘리엇 린드그렌:... 그래, 네 덕분이야. (똑바로 너를 마주보며 양팔을 벌렸다.) 고마워, 믿어줘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잠시 호흡이 멎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함께 돌아갈 수 있을까? 이번에도 꿈은 아닐까? 몇 번이나 그런 꿈을 꿨어. 꼭 이런 상황에서 손을 잡거나 안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꿈을... 깨고 나면 아무도 없는데.) 레이. ... (느리게 다가가서..)
(팔을 벌려 안았다.)
...
몇 가지 퇴원 절차를 밟은 후 당신과 엘리엇은 손을 잡고 병원 밖을 나옵니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밤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우며 어둡게 그림자가 진 도시의 건물들 너머로 해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3년 6개월 하고도 100시간을 넘어 너는 마침내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가면 같이 저녁을 먹고, 잠에 들고, 언젠가 엘리엇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면 함께 바다를 보러갈까요.
예전같은 삶을 살아갈 순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함께 걷는 길이 춥고 어둡더라도 맞잡은 손의 온기는 당신에게 뭐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요.
이만 돌아갈까요, 오늘 밤은 못 다한 이야기를 하며 잠에 들도록 해요.
END 1. 네가 내게 되돌아온 100시간
탐사자 생환, kpc 생환
보상으로 SAN +5 회복
크레센티 다 프림로즈:...
서러움.. Roll
기준치: 99/49/19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크레센티는... 서럽습니다.
돌아가는 길엔..
베이커리에서 당근 케이크를 사고
엘리엇의 입에 넣어주도록 해요...
체하지 말라고...
등짝도 때려주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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