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의 요람
2023-07-16
결국 인간은 그 의지로 살게 될 것이다.
장르: CoC
감독: 시
출연: 사라트 페르테나, 유리




매캐하고 소름돋는 냄새와,
모든 것을 씻어내릴 듯이 내리는 빗소리가 납니다.
무언가의 잔해 같은 쇳덩이들이 여기저기 발에 채입니다.
잿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으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사람도, 빛도…
…
조금씩 비가 그치더니,
빗방울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집니다.

기준치: | 95/47/19 |
굴림: | 8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 장소는 현실이 아닌 꿈.
어느새 우뢰는 그치고,
하늘에선 빗방울 대신 재의 파편이 느릿하게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비가 그친 이후 바닥의 쇳덩이들이...
회색 빛의 식물들로 변했습니다.
당신이 걸을 때마다, 발 아래의 식물들은 재로 변해 공중에 흩날립니다.
저 멀리,
번개가 반복적으로 치는 게 보입니다.

문제가, 생겼나? (느긋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지나치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 잠깐 이리 여유 부린들 어떤가.)
(어딘가로 정처없이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손을 뻗어 회색 빛의 식물을 만져본다.)
손을 뻗어 식물을 만지면…
손끝에 닿은 식물은 재로 화해 스러집니다.
잿가루가 날리는 방향,
번개가 내리치는 장소 중앙에
웬 작은 인영이 보입니다.

(인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작은 아이의 실루엣입니다.
당신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발걸음을 옮겨도…
아이는 환각같이 딱 실루엣만 보일 정도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아무리 걸어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오라는 아이 대신…
갑자기 천둥 소리가 짧게 들리더니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하다 못해 제 자신이 존재하는지조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입니다.

그 순간, 다시 번개가 칩니다.
번쩍, 온 주변이 빛나고...
아이와의 거리가 반으로 좁혀졌습니다.

번쩍, 짧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다시 번개가 칩니다.
다시 한번 엄청난 빛이 주변의 폐허를 밝힙니다.
아이와의 거리가 이제 더 가깝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습니다.

빛이 사그라들자
어둠이 다시 모든 것을 삼킵니다.
짧은 간극 이후, 또다시 번개가 치고,
눈부신 빛이 모든 것을 밝힙니다.
실루엣이었던 아이의 뒷모습은 이제 바로 앞에 있습니다.
손을 뻗자 아이가 뒤를 돌아보고,
당신의 두 눈이…
아이의 은은히 반짝이는 두 눈동자와 마주칩니다.
…
…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더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27일 올해 들어 전 도시의 모든 지역에 폭우주의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오늘의 날짜는, 10년 전 천문학의 역사상 기록적인 조화파수렴이 관측된 지 정확히 2일 전의 날짜로...]
조금 열려있던 창문 틈새로 라디오 방송이 들립니다.
무슨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기준치: | 95/47/19 |
굴림: | 6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음…
녹색을 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누군가가 문 앞에 있는 것 같네요.

아침부터 등장한 사람은,
당신의 인간관계 중 시간 관계 없이 찾아올 사람이 …
그리 많지는 않죠.
사라트입니다.

(그래서 문은 열어주고 자기는 씻으러 가는 이상한 결론이 나왔다.) 방에서 기다려. 준비하고 갈 테니까.

응. (착실하게 말 )
(반만 듣는다.)

문을 열자 사라트가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들어오네요.
전에 말하기를,
"남의 집에 방문할 때는 선물을 가져가야 한다고…"
그게 꽃다발만 가져가라는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꽃은 로벨리아.
좋은 향을 풍기는 보랏빛의 꽃입니다.
사라트는 알아서 기다리라고 하고…
씻으러 가면서

기준치: | 10/5/2 |
굴림: | 35 |
판정결과: | 실패 |
오늘은 보라색이네.

(평소 준비 시간 평균 2시간)
(온갖 케어 제품 챙겨바르고 헤어 세팅하고 옷에 장신구까지 어울리는 걸로 다 고를 즈음이면 사라트는 냉장고를 뒤져서 밥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준비 시간 평균 2시간.
오늘은 몇 시간 걸릴까요?
July 09, 2023 8:43PMKP:3 시간 후…
방으로 돌아오면 사라트가 창가에서 햇빛을 쬐고 있습니다.
창가의 꽃병에 꽂혀 있던 꽃은 로벨리아로 바뀌었네요.
원래 꽃병에 꽃혀 있던 꽃은 탈탈 털어 버린 모양입니다.

밥은?

기준치: | 10/5/2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어딘가가 이상합니다.
평소 느껴지는, 호의를 가진 사라트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입니다.


그리곤 순식간에 가운 안주머니에서 작은 스프레이를 꺼냅니다.
그가 스프레이를 당신의 얼굴에 뿌리자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떻게든 움직이려 해도...
몸이 마비된 느낌에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습니다.
흰 연기 너머로 사라트의 모습이 일렁입니다.
그의 살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살 아래의 인간이 아닌 무엇이 드러납니다.
기이하게 일렁이는 '무언가'
저런 건 절대 인간이 아닙니다.

기준치: | 67/33/13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성 감소 -1
당신은 곧 정신을 잃습니다.
…
…
눈을 뜨자,
주변은 어둠입니다.

손을 뻗어 주변을 더듬으면,
사방이 벽인 아주 좁은 공간 같습니다.
천장도 막혀 있습니다.

(사지는 자유로운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옷과 소지품은 멀쩡한지 확인해본다.)
July 09, 2023 9:02PMKP:옷과 소지품은 멀쩡합니다.
그 순간,
해가 뜨며 어둠이 걷힙니다.
당신은 사방이 투명한 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물체에 갇혀 있으며,
어쩐지...
익숙한 물체네요.

기준치: | 95/47/19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투명한 정지의 입방체입니다.
당신은 지금,
사라트와 산책… 비슷한 걸 했던
전 세계정부 건물 앞,
길 한복판에 놓여 있습니다.

(안에서 걷어차서 굴리면 굴러가나 하고 쾅쾅 차본다.)
쾅쾅 차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그때,
물체 한쪽,
투명한 벽면에 붉은 색의 숫자가 떠오릅니다.
떠오른 숫자는, 315360000.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시간 내로 부숴보라는 건가?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걸어옵니다.
정확한 형체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군가는 길을 따라 점점,
당신이 있는 투명한 정지의 입방체에 가까이 다가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은,
… 거꾸로 걷고 있네요.
그 사실을 눈치챈 순간,
멀리서 걸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빠르게 재생되는 영상처럼,
거꾸로 걸어 정지의 입방체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떠오른 숫자는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숫자가 떠오른 벽면을 손가락 끝으로 훑어본다.)
다가오던 사람은 계속 뒤로 걸어
당신의 코 앞까지 다가오더니,
당신과 정지의 입방체를 마치 환상처럼 통과해 뒤로 지나갑니다.
숫자는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 다시 나와 뒤로 걷기 시작합니다.

기준치: | 95/47/19 |
굴림: | 10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이건 또 뭐야?
…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네요.

숫자는 계속,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줄어듭니다.
당신은 이 시간의 흐름에 간섭할 수 없고,
정지의 입방체는 부서지지 않으며,
버튼조차 없습니다.

...
그 순간, 빠르게 줄어들던 숫자가 느려집니다.
정지의 입방체의 투명한 벽 너머로,
하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당신의 모습과...
그 옆에 선 사라트의 모습이 비칩니다.
3개월 전의 당신입니다.
다시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느려지고,
전 세계정부의 건물로 향하는 당신의 모습이 비칩니다.
모든 장면이,
뒤로 감아지고 있는 영화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해가 뜨고,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는
한 바퀴의 하루가 1초도 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뀝니다.
마치 공간을 이동하는 것처럼,
지어진 건물이 사라지고, 도시가 점점 옛날의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시골 마을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이곳은 어디이고, 언제인지 감조차 오지 않습니다.

입방체가 조금씩,
익숙한 회색빛으로 불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숫자가 떨어지는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정지의 입방체에 남은 숫자는…
5,
4,
3,
2,
…
1.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방체의 문이 열립니다.
짧은 안내음이 나옵니다.
July 09, 2023 9:23PM :2044년 8월 27일에 도착하였습니다.

흰 연기가 걷히면…
이곳은… 숲?

태초의 숲으로 돌아온 걸까요?
그렇다기엔, 2044년이라고 했는데.
높게 솟은 웅장한 나무들과...
여름답지 않은 시원한 공기가 고고하게 볼을 간질입니다.
나뭇잎과 풀줄기 사이로 갈래 갈래 찢겨진 찬 빛이 당신을 비추고,
주변을 아름답고 고요하게 빛냅니다.
들려오는 소리는 새가 낮게 지저귀는 소리, 풀벌레 소리, 한여름의 매미 소리, 어디선가 숨겨진 채 나긋하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
아름다운 자연이 당신을 휘감습니다.
숲을 따라 조금 걷자 숲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들의 밀도가 점차 옅어지고, 길이 나타났네요.
멀리 보이는 숲 밖의 하늘이 조금 붉은 것으로 보아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즈음인 것 같습니다.

정지의 입방체에서 나온 말이 진짜라는 가정 하에,
10년만 과거로 돌아왔을 뿐인데도
2054년의 빽빽한 고층 빌딩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습니다.
숲의 밖으로 나오자.
옆에는 커다랗고 짙은 남색의 호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상아색 흙이 깔린 공터가 숲과 연결되어 있네요.
저 멀리에는 적당한 크기의,
학교가 한 채 서 있습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38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학교 운동장에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보이는 몇 명의 아이들이 뭉쳐 있습니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힐끔거리며 수군대고 있네요.
자신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등을 돌린 채로 책을 읽고 있는...
주황색 머리카락의 아이를 향해,
"괴짜?"
"이상해!"
…다분히 악의가 가득한 소음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소음을 귓등으로 듣고 있는지…
돌아보지도 않고 책에 시선을 두고 있습니다.

(그게 더 나이가 많은 아이든, 선생이든... ...그런데 지금은 성인에 직업 군인으로 살아온 세월까지 더해진 참이다. 쥐어패면 큰일난다.)
...음. (대박 곤란한 얼굴로 아이들을 향해 걸어간다.) 이봐.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순간, 시간이 멈춥니다.
하늘을 날아가던 새마저 허공에 멈춰 있습니다.
웅성대던 아이들은 고개를 돌린 채로...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서 있습니다.

(굳은 아이들 머리를 한대씩 통통통 두드려본다.)
통통통.
그 순간,
당신의 발치 앞에
모래가 떨어지는 모양새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이 생겨납니다.
구멍 위로 별빛을 닮은 반짝이는 글자들이 떠오릅니다.


기준치: | 95/47/19 |
굴림: | 2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런 건 그냥 문자로 알려주면 안 될까?
어느 순간 허공 위 알파벳 글자들이 재배치됩니다.
구멍 위로 떠오른 문구는 하나의 긴 아나그램이네요.


문구가 아나그램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구멍 아래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짧게 들립니다.
"제법이구나."
목소리는 어딘가 얇게 떨리는 노인의 목소리 같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그때,
구멍 주변이 넓게 무너집니다.
구멍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떨어진 곳을 바라봐도 빛 한 줄기도 없습니다.
구멍 아래로,
아래로 …
계속 떨어지던 당신의 주위가 한 순간에 바뀝니다.
여긴 …
가정집의 주방?

(이제 밥 주려나 하는 생각이나)
밥?
그러고보니 오늘 식사를 못 했습니다.
분명 구멍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정신을 차리니 웬 가정집의 주방 안이네요.
주변을 둘러보아도 특별한 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일반적인 주방 안에 있을 법한 물건들 뿐.
당신이 앉아 있는 작은 식사용 탁상,
싱크대 위에 걸려 있는 두 짝의 스트라이프 오븐 장갑,
따뜻한 열기를 내고 있는 오븐…

기준치: | 70/35/14 |
굴림: | 5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오븐 속에서 부풀고 있는 쿠키가 타닥이며 구워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누구누구만큼 소리가 잘 들리는 것 같아요.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뒤로...
오븐 장갑을 끼고 있는 한 할머니가 느릿하게 걸어들어오네요.
군데군데 하얗게 센 머리는 짧고 동그랗게 말려 있으며,
썩 크지 않은 키와 넉넉한 체형이 어딘지 푸근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눈 옆의 잔주름과 웃고 있는 입꼬리에 깊게 패인 주름이 살아온 나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July 09, 2023 10:10PM노인:(홀홀…) 들어온 건 자네다만? (오븐에서 갓 구운 쿠키를 꺼내어 접시에 담는다.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접시 하나 더 꺼내 쿠키 절반을 올렸다. 식사용 탁상 위에 올린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9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July 09, 2023 10:12PMKP:당신은 할머니의 두 눈동자에 감도는 묘한 빛을 봅니다. 마치 북극 상공의 오로라와 같은 빛입니다.
July 09, 2023 10:13PM노인:그래, 그랬지…. 먼 길을 왔어.

July 09, 2023 10:44PM노인:(먹으라는 듯 손짓한다.) 정지의 입방체의 오작동…. 내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물건을 누군가가 훔쳐 악용한 것 같구나.

그건 무슨 물건이죠? (2 와삭에 하나 해치우고 새 쿠키를 집어들었다.)
July 09, 2023 10:49PM노인:시간을 멈추거나 돌리고, 때로는 가속시키는 물건이지. 수리해야 할 거야.. 암, 수리해야지.

누군가 날 그 안에 넣고 돌려버렸다는 건데... (누구인지는 알고, 의도도 대충 알 것 같고, 그럼 중요한 건.) 원래 시간으로 돌아가려면 수리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July 09, 2023 10:52PM노인:(말없이 웃으며 긴 목걸이를 늘어뜨려 보다가 건넨다.)

목걸이의 끝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녹빛 수정이 걸려 있습니다.
막대 형태를 띈 녹빛 수정의 길이는 겨우 손가락 한 마디를 넘으며,
투박하게 깎인 모양입니다.
노파의 눈을 닮은 신비로운 빛이 수정 속에 감도네요.

기준치: | 95/47/19 |
굴림: | 1 |
판정결과: | 대성공 |
July 09, 2023 10:53PMKP:보너스 주사위 +1.
노인의 손은 분명 아까까진 비어있었는데
언제 목걸이가 생긴 걸까요?
목걸이를 살펴보고 있으면,
노파는 당신의 어깨를 슬쩍 밉니다.
…
분명 가볍게 건드린 것 같은데,
당신은 그대로 뒤로 넘어집니다.
마치 중력이 강해진 것처럼,
불가항력을 느끼며 바닥으로 느릿하게 떨어지는 당신의 귓가에…
노파의 짧고 온화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습니다.

바닥에 머리가 닿는 순간,
눈 앞의 광경이 바뀝니다.
한 아이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이의 두 눈은 금빛으로 빛나며,
주황색 머리카락이…
…?

사라트?



(손가락 두 개 펴서 눈앞에 내민다.) 이거 몇 개?


(어깨 꾸욱 밀어 다시 눕힌다.)
두 개였어요. (농담 안 통하던 성격 그대로)

두 개. 알아. 만나서 반갑긴 하다만 돌아가야 할 곳이 있어서 바빠. 아직 그 학교 근처에 있으려나. (다시 스르륵 일어난다.)
아, 혹시 나 쓰러졌을 때 손에 쿠키 없었나?


안에서 봐선 특별할 것 없는 가정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근한 나무 침대와 가벼운 여름 이불이
단정하게 당신의 위에 덮여 있네요.
침대 맡 여린 색 나무로 만들어진 선반에는...
각종 식물학과 천문학 서적들이 쌓인 채 즐비합니다.
바깥과 연결되어 방 한 면을 전부 채운,
한 뼘 정도 열린 유리 문을 통해 저택의 뒤뜰이 보입니다.
부서진 보석의 파편처럼 노을의 빛을 잔잔하게 비추어 보이는 인공 호수와,
적당한 길이로 단정하게 다듬어진 풀.
창 너머로 지고 있는 깊은 주홍빛의 노을이 방을 밝히며,
낮은 선율로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온 방을 나른하게 적십니다.
여닫이 문을 바라보고 있는 방의 면엔,
짙은 색 나무로 만들어진 책장이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독 쿠키?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린다.)


아차.



비밀. (산뜻!)

(물끄러미)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범죄자?

굳이 따지자면 피해자야. 누군가 날 납치해서 멀리 버리고 가버렸는데,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거든.
물론 돌아가면 범죄자가 되긴 하겠지... (중얼...)




길을 찾아갈 능력이 있으니 어떻게든 집에 갈 수 있겠지만,
일단 밥 좀 줄래? 아침부터 내내 공복이라.

그러고 있으면,
방에 누군가가 들어옵니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사라트와 같은 약한 곱슬머리를 가졌으나,
그의 머리카락은...
옅은 갈색입니다.
숲을 닮은 짙은 녹안을 가지고 있으며,
시선은 어쩐지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깁니다.
그는 당신의 목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한껏 뚱해진 얼굴로 여닫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유리. 동생분께 여러모로 신세 지고 있습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라트가 앉아있던 나무 의자에 걸터앉는다.) 제 동생과 친하신가요?


이곳까지 오신 걸 보면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나 봐요. (침대를 손끝으로 느릿하게 두어 번 두드리다 멈춘다.)

당신은 이게 뭔지 아는 모양이니, (목걸이 줄을 쥐었다.) 서로 하나씩 이야기하면 공평하겠는데.

메뉴는 뭐가 좋아요?


(문 밖으로 고개만 빼꼼) 아힐. (고개를 숙여 무언가 속삭이고 돌아서서 방 밖으로 나간다.)


(미간 짚는 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섰다.) 식사 준비하는 동안 저택 구경시켜주래요.

의외로 과보호가 심했네, 사라트.

과보호?

(너를 포함한 타인에게 요리를 맡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은은하게 웃었다.)
아냐. 좋은 사람이라고. 너무 반항적으로 굴지 마. 동생이 신원도 확인 안 되는 수상한 사람을 길에서 주워 왔으면 보통은 다들 저런 반응을 보일 테니까.
(일어나서 약간 어정쩡하게 섰다. 제대로 서면 사라트가 너무 작아보이는 탓이다. 원래도 적당히 작은 체구 취급했는데 이건 너무 작군...)

(올려다보다가 그만둔다. 커.) 서재랑, 뒤뜰이랑, ...(고민..) 정문? 세 곳쯤 돌아보면 안제가 부를 거야.

신원은 나도 잃어버려서 어떻게 증명해 줄 수가 없네. 잔소리가 심하면 네 탓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탓이라고 팔아먹어.


(아몬드 초코바 다시 올려줌.)

(다시 받은 아몬드 초코바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손 잡아끈다.) 발목은 괜찮아?


…
학교 앞에서 방까지 어떻게 데려왔다고 생각해?
(말하면서 방문 열고 들어간다.)

난 또 잡아당기다가 부러지는 소리라도 들었나 했네. (정말 멀쩡한 발목 한 번 돌려보고 따라 들어간다.)
둥그런 방입니다.
영화에 나오는 장소들처럼 거대하고 웅장하지는 않으나,
적당한 양의 햇빛과 먼지가 나른하게 떠 다닙니다.
많은 책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언어가 섞인 책들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책이 한 권,
당신의 눈높이에 꽂혀 있네요.

어디서 많이 본 <정글 나무 대백과>입니다.




특별한 책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런 저런 학문에 관련된 책이 많습니다.
비교적 높이 위치한 선반에는 주로 우주의 형상이 그려진 천문학 책이 꽂혀 있고,
사라트의 눈높이에 가까운 선반에는 손때가 탄 각종 식물 사전이 꽂혀 있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사라트의 이름이 적혀있는 동화책도 보이네요.

식물을 좋아하나? ...내 어머니도 식물 학자였는데. 옛날에는.

그러면, (오빠는 빼고, 아저씨..도 빼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낯) .. 당신도 잘 알아요? 식물.



대신 태초의 식물은 좀 아는데. 그려줄까?

그림 잘 그려요? (질문이 많다.)


(필기구들을 내민다.) 달걀부침 만들다가 벽이랑 프라이팬을 조금 태웠을 뿐인데.


그래서.. 안제 무릎을 발로 찼어요. (종알종알)

(바닥에 대강 앉아서 꿈에서 보던 풍경을 그려나간다. 기억이 약간 흐릿해졌지만, 적당히 뭉개진 풍경 정도로 그릴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 적은 몇 번 없지만 이런 것도 재능에 속하는 모양이다.)
자, 이게 아마 태초의 숲이다. 정확한 종은 모르겠네. 생김새는 기억하지만.

종은 나중에 찾아볼게요. (코팅제까지 뿌려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 밖을 기웃거린다.)
고기 굽는 냄새 나.

아직 부르려면 멀었나? (생생)




저택의 뒤뜰.
부서진 보석의 파편처럼 노을의 빛을 잔잔하게 비추어 보이는 인공 호수와,
적당한 길이로 다정하게 다듬어진 풀들이 다리를 간질입니다.
작은 원통형 물레방아가 일정한 리듬에 맞춰 가끔 또각이는 소리를 내며,
낮은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적십니다.
사랑으로 가꾸어진 것 같은 예쁘고 희귀한 식물들이 자리합니다.
어두운 나무빛을 고급지게 띠는 저택의 한 면으로
담쟁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
한쪽에 바베큐 그릴이 있네요.
아래에 숯불도 보입니다.







(갓 지은 밥까지.)
안내를 받아 손을 씻고 돌아오면..
바베큐 풀세트네요.
한쪽에는 호일에 싼 감자 고구마 옥수수도 보입니다. 굽지는 않은 것 같지만요.









있잖아, 사라트.
사실 이렇게 된 건 네 책임도 조금쯤은 있어서, 양심 없이 밥이나 몇 끼 뜯어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편식은 안 돼, 아힐.


안제는…






(귓속말이라도 해볼까 고민하다가 과하게 청각이 좋은 동생 물끄러미..)

(저쪽으로 원위치했나? 그러면 됐어.)




어릴 때부터 편식을 하면 못 쓴다.






(손으로 유리 옆구리 찔렀다.)


(대왕 쌈 하나 와아악 먹어치움) 동생이 의젓하게 커버리면, ...아쉽겠네요.

(사라트의) 친구잖아요? (최소 여섯 .. 일곱 살은 차이 날 상대에게 보답을 요구하는 건 조금 그렇기도 하고.)


(와중에 점점 먹는 속도 느려지는 사라트 손에 시원한 음료 들려주고) 마시면 위장이 리셋된다.



하지만 갚을 수 없는 인간은 껄끄러워. 빚이 감당 안 될 만큼 불어날 것 같아서. (눈을 휘어 웃었다.)

(음료도 리필.) 호의를 빚이라고 생각하고 사나요?






(입에 담은 채로 보라색 머리 사람 본다.)

외동입니다. 그런데 모시고 사는 데 약간 익숙해서.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야..





커서도 저만하면 안 되는데.



(빈 접시 빤... 보다가 고개 들었다.) 뒷정리 도움 필요합니까?



도도도 사라진 방향으로 가 보면..



(다시 고개 돌렸다가 금세 허망해진 얼굴) ...
새. 날아갔어. (꽁)

걸어가면 좀 곤란하지.
무거워 보이는 문입니다.
문 앞에는 작은 나무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냥 밖에 나가서 잡아오면 되잖아?


명패는 굉장히 정갈하며, 잘 다듬어진 것 같은 매끈한 표면이 어두운 나무빛을 띕니다.
글자는 음각에 금박 처리가 되어 있으며, 나무 결이 선명합니다.
[ Atmis A. P. : ASTROLOGIST ]
높게 솟은 나무들과 잘 가꾸어진 꽃나무들이 정문을 제외한 저택 주변을 둘러싸고 있네요.
해가 거의 져 갑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관심가져본 적도 없었고.)


왜 크지? (쓰러져 있을 때는 이것보다는 작아 보였는데.)

이제 밥도 먹었고. (작은 사라트 빤히 보다가 고민한다.) 내가 어디 쓰러져 있었는지 기억해? 일반인은 반나절 정도면 다 잊어버리던가?

해 졌어. 못 나가요. (손 끌고 저택 쪽으로 간다.)


?


덜 자랐지만 애는 아니야. (중요하니까 두 번 강조)


(들으라고 한숨 쉬고 마저 끌고 간다. 그래봤자 열세 살 힘이지만.)

끌려가줍니다..
사라트가 유리를 데려간 곳은..
거실이네요.




(방금 다 달래놨는데)


(일어섰다) 핫초코 타 주면 풀려요. 절반쯤은.



당신을 서재로 안내한 아트미스는,
서재의 한 구석에서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고서를 꺼냅니다.
당신을 앞에 세워둔 그는,
눈을 반짝이며 고서의 페이지를 뒤적거리다
어떤 수정이 그려진 페이지에서 멈춥니다.
당신의 목에 걸려있는 수정과 동일하게 생겼습니다.



알 수 없는 언어입니다.
오래 살펴본다면 분석해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모르겠네요.

기준치: | 10/5/2 |
굴림: | 80 |
판정결과: | 실패 |
아트미스의 표정이 복잡해 보입니다.

내가 모르는 언어도 있고, 재밌네... (잠깐 학구열 나올 뻔)

보이지 않는다면 설명은 나중에. (책을 덮는다.) 밤이 깊어가는데, 쉬세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착한… (본다.) 어른이지요.






방으로 들어가면..
침대가 보입니다.
침대 맡의 책 세 권도 눈에 띄네요.

순서대로 아트미스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수첩】, 검은 색의 두꺼운【마야 문명 속의 천체들】 한 권, 그리고 소설【리지아】입니다.

July 10, 2023 9:44PM ◈ :한 손에 들어오는 깔끔한 갈색의 가죽 수첩입니다. 손때가 조금 탔지만 정갈하게 관리되었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첫 장을 제외하면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혀있는 글 뿐입니다.
[ 밤하늘이 손님이 오시리라는 사실을 예견한다. 또한 식▒들▒ ▒합▒ 정▒. 친우는 요즘 따라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손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
[ 별들이 일렬로 서는 밤엔 신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뎌져 달빛에 신화의 힘이 스며든다. 이 힘을 담아둘 방법이 있었다면… ]
[ 29일에 조화파수렴이 일어날 징조가 보인다. 1987년 이후 57년의 간극. ]

... ... ...그...
(사이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생각을 좀 해보고...)
사라트... 괜찮겠지... (낯빛이 무척 어두워짐...)
(너희의 그 형제가 사이비란 말은 한 적 없었잖아. 당연하다. 보통 말 안 한다. 심지어 미래에선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다.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 유리의 마음이 무거워졌을 뿐이다...)
(검은 색 책을 꺼내 훑어본다.)
July 10, 2023 9:49PM ◈ :무척이나 오래 되어 보이는 책입니다. 밤하늘을 닮은 검은 색의 두꺼운 표지에 황금색의 천체 지도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네요. 이 두꺼운 천문학 서적엔 책갈피가 끼워져 있습니다.
책의 전문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지만, 책갈피가 끼워진 페이지에는 당신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또박또박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네요.
[ 조화파수렴이란 우리 은하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일렬로 줄을 서게 되는 현상이다. 세레스와 명왕성, 또한 제 9행성을 포함하지 않으며… ]
아래에 다른 색의 펜으로 첨언이 쓰여 있습니다.
[행성들이 줄을 서는 밤엔 신화의 축복이 있다는데, 본 것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 당황스럽네.…]

(소설을 꺼내 읽는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93 |
판정결과: | 실패 |
피곤합니다..
잠이 몰려오네요.
베개가 유난히 폭신해 보입니다.

(기묘할 만큼 태평한 정신머리로 사이비의 저택으로 의심하고 있는 와중에도 태평하게 누웠다.)
사이비의 저택인가? 의심하면서도
유리는 태평하게 누웠습니다.
쉬고 나서 생각하자.
…
깜박,
깜박,
깜박, ..
잠깐의 간극 후 눈 앞이 환해집니다.


기준치: | 70/35/14 |
굴림: | 5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몇 시인지는 모르겠네요.
다음과 같은 방송이 귀를 울립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세계정부의 과학실로 초대했으며, 현재 인공 식물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
언젠가 들어 본 방송입니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시선 한 구석에 스크린이 보입니다.
스크린에는 어딘지 익숙한 사람들의 얼굴이 주욱 뜹니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모습인 걸로 보아...
아무래도 아까 설명한 과학자들의 얼굴 같습니다.
빠르게 넘어가는 얼굴들의 사이에...
누군가의 얼굴이 얼핏 보인 것도 같습니다.
그 순간, 주위가 웅성입니다.
당신의 뒤에서 작은 대화 소리가 들립니다.
익숙한 목소리,
사라트와 당신입니다.

이미 했던 대화. 이미 와 본 장소. 이미 겪은 일.
또 꿈이네요.
"너도 나올 땐 방독면 써라. 오늘 미세먼지 최악이다."
"...그래. 다시 나올 때는 방독면 쓰마."
과거의 대화들이 재생됩니다.

조금 더 말을 이어가던 사라트가
당신에게 가운과 방독면을 꺼내 건네던 순간,
모든 것이 멈춥니다.
세계정부의 건물이 조금씩 잿빛으로 변하더니
모든 건물들이 느릿하게 재가 되어 마치 바람 앞의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하늘에서 나풀거리는 회색 눈이 조용하게 쌓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건 화산재를 닮았습니다.
차갑지 않은 회색 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바닥에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잿빛으로 무너지던 빌딩 건물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습니다.
방독면을 손에 든 꿈 속의 당신이 잿빛으로 변하더니,
바람에 나풀거리며 허공으로 흩날립니다.

콰광-
갑자기 천둥 소리가 짧게 들리더니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하다 못해 제 자신이 존재하는지조차,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입니다.
그 순간, 번개가 칩니다.
번쩍, 온 주변이 빛납니다.
어쩐지 익숙합니다.

걸음을 내딛는 순간 사라트의 모습이 보였다가,
곧 번개의 불빛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어둠에 휩싸입니다.
번쩍, 짧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다시 번개가 칩니다.
다시 한번 엄청난 빛이 주변의 폐허를 밝힙니다.
사라트는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익숙해진 어둠이 다시 모든 것을 삼킵니다.
짧은 간극 이후, 마지막으로 번개가 치고,
눈부신 빛이 모든 것을 밝힙니다.
그저 미동 없던 사라트의 뒷모습은 이제 바로 앞에 있습니다.
순간, 그가 뒤를 돌아봅니다.
당신의 두 눈이 은은히 빛나는 두 눈동자와 마주칩니다.

…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사람이 기껏 휴가를 즐기고 있잖아.
눈을 뜨자 축축하게 젖은 뒷목이 느껴집니다.
식은땀이네요.
평소의 아침들과 같은 시원한 바람보단...
어쩐지 더운 바람이 여닫이 문 너머로 불고 있습니다.
해가 조금 시들하게 뜬 것을 보니 늦게 일어난 것 같네요.
매미 소리가 들리며, 여름 바람이 정원의 풀을 흔듭니다.



죽었나아..
발소리가 멀어집니다.

방 옆에 붙어있던 작은 문을 열면 욕실입니다.
각종 세면도구와 수건과 기타 등등..
욕실 문 옆에는 갈아입을 옷도 보이네요. 사이즈가 맞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름이니까 헐렁한 옷이면 어떻게든 되려니... 쓰는 제품이 없어서 3시간까지는 못 하고 2시간 선에서 끝냈다.)
옷이...
놀랍게도 대충.. 맞네요.

사라트. (방 문 이제야 열어줌)

(십년 전에도 비슷한 성격)
이렇게 많이 자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누구 덕에 잘 요양하다 끌려나왔는데 잠깐을 못 참아주고...




고쳐지지 않았을 테니까, 하루 더 요양하고 가세요.




언제. 저거... 아니다, 이거 어떻게 고쳐지는데.








내가 어디 가서 잘 눕혀지는 사람이 아닌데.

(웃음..) 어쩌겠어요.


사라트, 약 만드는 동안 방 구경이라도 시켜 주는 건?

(그렇죠?)

응, 별 관심 없어.



방에 있으면 책 가져다 줄게요. (어쩐지 달래는 투)




사라트를 따라 어느 방으로 가면..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녹빛.
이건… 식물의 요람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벽을 타고 자란, 깔끔하게 다듬어진 담쟁이,
창가에 일렬로 세워진 처음 보는 난색 식물들의 화분,
책상 옆의 커다란 난초,
보라색부터 분홍색을 띠는 형형색색의 꽃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해 보이는 식물들,
천장에 붙어 있는 선풍기 날 위로 겹겹이 자란 아름다운 덩굴,
책상 위의 작고 여린 라일락 화분…





(피피 화분도 들고..) ?
똑같아. (화분 번쩍 들어보인다.) 색.

R -12 G +2 B +26 정도 차이 나는데.
(색에 엄격한 편)




나같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안 묻지는 않지?

(비즈니스 미소 방긋)


닮아서?


사람이나 동물보다 조용하기도 하고. 식물은... 잠깐 안 보면 금세 쭉 자라 있어요. (유리에게 시선을 두다가 다시 덩굴 본다.) 가꾼다고 가꾸는 사람 마음대로 자라진 않는데, 그것까지도 좋았어요.
... 그리고 이건 나처럼 … 멀리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조금, 닮아서. (작게 중얼거리다가 웃는다.)


멀리 간다고 덜 답답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으음...


부족해요. (짧은 답을 내어놓는다. 좋아하지만, 이 세상에서 숨을 쉬기에는 부족해서.)




(도움 안 되고 답답하기만 한 사라트 페르테나라니.) ... (꽁한 낯)


(물끄러미.. 유리에게 시선을 준다. 뭐 했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동생이 미래에서 뭘 했나 보다.)
하하. 책을 잘못 가져왔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들고있던 책을 슥, 숨긴다.) 별 떴어. 보러 가. (반대 손에 들고 있던 소풍 상자만 열린 문 앞에 들여놓고 간다.)

(쪼끔 풀린 표정)


나도 갈색 머리였으면 더 좋았을걸. (소풍 상자 들고 총총.. 가다가 뒤돌아본다. 따라오나?)


앞서 간 사라트는...
벽과 같은 색으로 솟아 나온 작은 손잡이를 잡아 당깁니다.
그러자, 틈이 매우 작도록 벽에 완벽하게 꼭 맞아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문이 천천히 열립니다.
문은 성인 한 사람 정도가 딱 맞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네요.
어둠에 휩싸여 희미한 계단이 보입니다.


고개를 숙이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텅 빈 테라스를 닮은 넓은 옥상이 펼쳐집니다.
그새 해는 완전히 떨어졌으며, 광활한 하늘이 펼쳐집니다.
선선하고 어쩐지 심장을 뛰게 만드는 차가운 밤바람이 당신의 머리칼을 흔듭니다.
옅은 색의 달이 떠 있습니다.
하늘은 도시에선 보기 힘든 별빛으로 수놓아져 있네요.
테라스 중앙에는 거대한 천체망원경이 보입니다.


(최근 본 밤하늘의 기억과 별자리를 대조하면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 실용적이고 감성 없는 생각으로 하늘을 살폈다.)
망원경의 손잡이에는 A라는 이니셜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네요.
사라트는 렌즈에 눈을 맞추고 작은 조정기들과 겹겹의 렌즈들를 돌리며 망원경을 조정합니다.

봐요. (망원경 가리킨다.)



(의욕 없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눈을 가져다 댄다.)
망원경 속에서 두 별이 빛납니다.
다른 하나가 조금 더 작은, 두 겹의 식쌍성.
푸른 빛과 노란 빛으로 빛나는 두 별이 당신의 눈 앞에서 그 밝기를 영묘하게 변화시킵니다.


(아니면 말고.)

조금 더 바라보자, 푸른 빛은 북극 오로라의 보라빛으로 빛나고,
노란 빛은 이글거리는 태양의 주황빛으로 느릿하게 변합니다.

내일은 행성들이 한 줄로 선대요. (행성에는 관심 없지만 전해들었으니 하나 더 말해준다는 투.)

별들이 일렬로 서는 밤엔 신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뎌져 달빛에 신화의 힘이 스며든다. ... (사이비가 사이비스러운 의식을 행하는데 동생까지 거기 갖다놓은 상황인가 이거?)

(무슨 말이지?) 동화책?

기준치: | 90/45/18 |
굴림: | 1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사이비 의식인가?
생각하고 있으면,
무언가 이상합니다.
양 손끝이 짙은 남색으로 물들었습니다.

짙은 남색이 끝이 아니네요.
손 끝이 하늘의 광경을 닮았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섞여 잘 구별되지 않던,
밤하늘이 손 끝에 담겨 있습니다.
양 손 끝이 짙은 남색과 여러 오로라빛이 섞인 채 반투명합니다.
그 속에는 별을 닮은 반짝임이 신비감을 더하고 있네요.
이성 -1

마치 자신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저 우주와 하나가 되어 가는 것만 같은 감각이 손 끝을 잠식합니다.

기준치: | 95/47/19 |
굴림: | 92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아니, 이런 게. (손 들어봄.)
어쩐지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들어갈까요? (달걀 샌드위치 다 먹었다.)

옥상에서 내려오자 거실의 시계는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각을 가리키고 있네요.
사라트는 손님방 앞까지 당신을 배웅하더니, 문을 닫고 나갑니다.
침대 머리맡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July 11, 2023 12:43AM ◈ :[정해진 운명의 기묘함]
작은 수첩 두께의 책입니다. 책을 열자 첫 장의 빳빳한 종이에 작고 흐린 글자가 타자기의 흔적을 남기며 찍혀 있습니다.
[WYRD - 단어의 어원은 북유럽의 Urðr. 울드라고 읽으며,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노른의 세 여신 중 '운명'을 뜻하는 여신의 이름. 개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신앙과 관련이 있다.]
책을 넘기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찍혀 있습니다.
잉크가 떨어진 타자기로 쓰인 듯, 글자들은 점점 옅어지더니...
결국 백지와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네요.


그때, 책의 빈 페이지들 사이에서 한 쪽지가 떨어집니다.

[ 조화파수렴은 수정에 힘을 불어넣는다. 이는 별들이 나란히 서며 흐려지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가 단순하던 공기에 마력을 흩뿌리며, 이 신화의 틈에서 새어나와 공기 중을 방황하는 마력들이 수정에 이끌려서 채워지는 형태로 작동하는 고대의 산물이다. ]

왜, 말로 대답하면 정말 사이비라고 체포라도 할까 걱정되던가.
대답은 당연하게도..
들리지 않네요.

오늘도...
별로 한 건 없지만, 잠이 오네요.
어딘가에 잠이 오게 하는 식물이라도 있나 봅니다.

…
...
눈을 뜨자 식물질이 무성한 정글입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미로처럼 얽힌 잎사귀들 사이로 초록빛 햇빛이 들어와 당신을 영묘하게 비추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익숙한 곳.
익숙하게 발에 닿는 흙.
익숙한 어둠, 익숙한 빛.
긴 풀들이 다리를 간질이고, 저벅이는 흙의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하지만...
정글은 바람이 불 때마다 풀들이 스치며 나는 싱그러운 소리를 제외하면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정글에는 그 어떠한 생물체도 없고, 사람도…
?
저 멀리 누군가가 서 있습니다.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아 구별은 가지 않네요.
흰 가운이 눈에 띕니다.

(익숙한 곳이다. 느긋한 걸음을 옮겨 누군가를 향해 다가간다.) 야.
사람의 형상을 향해 아무리 걸어가도 어쩐지 좁혀지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지 않습니다.
형상을 향해 걸어갈수록 어쩐지 풀과 나무들이 자라나는 것만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완전히 빽빽해진 정글.
굵은 풀과 나무들이 당신을 막아섭니다.
...
그 순간, 익숙한 물이 발에 닿습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물이 불어남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시들기 시작합니다.
나무들은 계속 시들더니 점점 재가 되며, 호수의 물은 재가 된 나무들을 삼켜가며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물이 머리 위로 차오르자 고통이 당신을 덮칩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지 않습니다.
...
물이 차올라 감긴 눈 위에 따스한 빛이 닿습니다.
눈을 떠도 물은 눈을 아프게 하지 않으며, 어느새 모든 나무들은 사라져 있습니다.
물 속이지만 숨을 쉬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눈 앞으로 물 속에서 느긋하게 흔들리는 자신의 머리칼이 보이네요.
누군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사라트의 두 눈과 마주칩니다.
그가 입을 열자, 입 안에서 공기방울이 위로 올라갑니다.

...
...
어딘가에서 떨어지는 느낌에 눈을 뜨자,
당신은...
침대 아래로 떨어져 있습니다.


아. (한가하게 손 흔들어준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22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커튼을 치며 보면, 양 팔이 팔꿈치까지 투명해졌습니다.
몸의 경계선과 투명의 경계선이 흐려져가며, 투명한 팔 안에는 여전히 우주가 떠 있습니다.







(방을 가로질러 반대편 문으로 향한다. 문 앞에 놓아두었던 옷을 내밀었다.) 지켜보니, 당신은 확실히… 내 동생에게 위협이 될 사람은 아니네요.

위협이, 되었던가... ... (군인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총을 겨눌 뻔 하기도 하고 아주 많은 일이 있었던 기분인데. 다만,) 그 애 기준으로는 그럴 지도.
(위협도 자신의 존재가 명확히 존재하기라도 해야 당할 수 있는 것이라. 정체성이 희미해진 지금은 뭘 위협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러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건, 없건, 당신 동생이 닳고 닳아 미래에는 기어코 무엇이 자신인지 알 수 없는 모래 한 줌만 남을 것이라고, 그마저 서서히 날아가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렸다고 말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옷을 받아들고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수리는 됐나?

아트미스는 작게 웃은 후, 당신의 머리 위에 제 손을 올립니다.
온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질 않습니다.

아트미스의 눈을 바라보면,
짙던 녹안에서 어쩐지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더니,
아트미스의 등 뒤로 거대한 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솟아납니다.
익숙한 나무들.
이건…
그 곳에 있던 나무들과 똑같습니다.
…
그 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수리하라. 수리하라. 수리하라. 수리하라…"
처음 들어보는,
알 수 없는 목소리.
유리, CoC 시나리오 [녹의 요람] 독자적 주문을 습득합니다.
그가 유리의 머리에서 손을 떼어내자…
환각들이 재처럼 사라집니다.


감사를 표하지. 존재가 사라질 처지의 이방인을 저울질하는 성질머리는 어떨까 싶지만, 뭐, 그 애 형제인데 오죽하겠어.
어려운 결정에 보답은 못 해주겠어. 당신 동생에게 갚겠다고 하고 싶어도... 이미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너그러운 사람이라.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시간을 건너온 당신이 더 잘 알겠죠. 아직은 쓸 수 없겠지만.. 때가 올 거예요.
(유리 문 밖을 가리킨다.)
보답은 필요 없어요.
밖을 보면, 방금 전까지 밝았던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꽤나... (컨셉에 충실하네. 라고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때가 빨리 오긴 할 모양이다.)
당신, 그냥 드러내 놓고 사는 게 낫겠어. 어차피 티나니까.
...아닌가? 어머니 탓에 익숙해서 눈치챘던가? 그 사람만한 성질머리가 또 없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고. 학교에서 싸움박질 좀 했다고 다 죽여버리겠다며 냅다 총을 꺼내들고 학교로 가기 전까진...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 채던데, 당신은.. 그래요. 익숙했나 보죠?

사라트는?


기준치: | 70/35/14 |
굴림: | 8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쿠당탕탕!
밖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말하자마자. (방문 열고 나간다.)
July 16, 2023 9:57PMKP:유리는 방에 남아있나요?

(준비 시간 단축하고 단축해서 1 시간 소요.)
(맞는 옷으로 갈아입고 방금 백화점 밖으로 걸어나온 마네킹마냥 말끔한 꼴로 방 밖으로 나왔다.)
방 밖으로 나오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순간 당신을 덮칩니다.
그렇지만 주변은 변하지 않았네요.
주변이 변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변한 걸까요?

기준치: | 90/45/18 |
굴림: | 5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면 우주가 어깨까지 잠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리마저, 무릎까지 우주가 차올라 있네요.
그와 동시에, 목에 걸려있는 수정에서 빛이 납니다.

(아픈 얼굴이 아닌데??)

아플 사람은 이쪽인 것 같은데?

….
(환자는 때리면 안 돼..)




사라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신의 목에 걸려 있던 녹빛 수정이 맹렬하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수정은 행성의 배열에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편하고 좋았는데. (본심.)







알겠어. (손 붙잡고 저택 정문으로 달려간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있는 것보다 더 귀여운데.

… (두리번) 이거?
(귀여운 거.. 없는데? 나무 뿐이다. 항의하는 눈빛으로 물끄러미.) 없는데.


기준치: | 15/7/3 |
굴림: | 90 |
판정결과: | 실패 |
엇. (찰푸닥. 한눈팔다가 넘어졌다.)

기준치: | 5/2/1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엇. (못 잡았다.)



안 다쳤다. (조금 꼬질해졌지만.)



조금 더 걷자 남색 호수가 보입니다.
상아색 흙이 만연한 공터가 숲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 멀리, 적당한 크기의... 따스하고 고요해 보이는 밤의 학교가 고고하게 서 있네요.
호수를 따라 조금 더 걷자 숲의 시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들의 밀도가 점차 짙어지고, 길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해가 빠른 속도로 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집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오자 수정은 점점 더 맹렬한 빛을 냅니다.

(심각한 얼굴) 곰 나와요.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날이 어두운데, 넌 그만 돌아가.


위를 바라보자 둥그런 하늘이 보입니다.
명당이라는 건지, 이 곳만 나무의 밀도가 조금 옅어요.
둥그런 공터 같지만, 사방을 나무들과 이끼 낀 돌들이 가리고 있습니다.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네요.
하늘은 총 일곱 개의 빛을 제외하면 텅 비어 있습니다.
수정이 깨질 듯 빛납니다.

사라트가 중얼댑니다.
여전히 내리는 비가 당신과 사라트의 머리와 주변의 풀을 적십니다.

기준치: | 90/45/18 |
굴림: | 19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래서 사람들이 작아질 정도로 멀리 떠나고 싶어?

당신의 상반신이 전부 우주를 담고 있어요.
하늘과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본 채로 한쪽 팔을 들어도,
어디가 팔이 끝나는 곳이고 하늘이 시작하는 곳인지 구별이 가지 않네요.


그렇게 멀리 가면 안제랑 아템이랑, 헤어지잖아요.
없어지면… 무서울 것 같아요.


(고개 갸웃) 무슨 뜻이에요? (이곳에 남을 다른 이유?)

(세상은, 한 번 구했으니 할 만큼 한 것 같고. 그대로 사라지길 염원하던 삶이 약간 연명되었을 뿐이라 지금 사라진다고 해도, 아쉽지 않다. 그러니 존재의 경계를 잃고 우주로 흩어지고 있다고 해도 평온할 따름이다. 답을 얻지 못한 채로 연명만 하느니 사라지기 전에 답을 들으면 더 후련하지 않을까.)

가족 말고…
(안제와 아템이 사라지면.. 글쎄. 세상은 원래 혼자 살아가는 곳인데. 멀리 떠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겠지.) …… 왜 그런 걸 물어요?

(사라지고 있는 게 마음에 들어서, 평소처럼 껍데기를 씌워 가려놓아야 외면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거든.
너와 달리 형제도, 가족도, 식물이고 나발이고 흥미도 없는 내가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뭔가, 하고.

(올려다본다.)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으면 떠나도 괜찮지 않아요? 책임감으로만 남아있지는 말랬거든요. 오빠가.
책임감으로만 버티면… (뭐라고 했었지?) …나중에, 아플 거랬어요.
그렇지만 난. (시선을 하늘에 두고)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도 조금 더 머무를 거예요.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너는 앞으로 가진 게 없을 때도 잃어야만 할 거고, 세상에 대해 더 실망할 구석이 없다고 믿을 때마저도 새롭게 실망해야 한다. 그럼에도... 지칠 만큼 지치고, 떠날 이유가 될 만큼 수차례 고통을 겪고도, 마지막까지 떠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안타깝게 여겨야 할까, 나는.)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 떠나도 괜찮지. 일리 있는 말이야. 책임감으로만 버티기엔 지쳤고... 의무는 다했거든.
너한테만 물어보면 꽤 불공평한 처사가 될 테니까, 돌아가서 물어봐야겠다. (과거와 미래의 사라트를 구분해서 대한 적은 없지만, 친구로 지낸 경험이 있는 쪽에게도 답할 기회를 주는 게 공평하다. 감정도 삶의 이유도 닳아버린 쪽이라고 해도, 글쎄, 억울할 수도 있지 않나. 오라고 불러도 안 온 이유가 과거의 네가 떠나도 된단다, 였다고 하면.)
일곱 개의 빛이 점차 모이기 시작합니다.
순간, 하늘의 먹구름 속에서 초록빛이 잠시 은은하게 반짝였다 사라지더니,
한 줄기의 빛이 그대로 내려와 수정에 쬐어집니다.
놀란 아이를 뒤로 하고,
수정이 순간 맹렬하게 빛을 냈다가 폭발하듯 깨집니다.
그렇지만 조각이 떨어지거나, 어딘가로 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초신성을 닮은 빛을 내며 폭발하곤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괜찮아? 다치지는 않았어?
빛 너머로 놀란 말소리가 들립니다.
초신성의 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이곤, 반쪽 우주가 된 당신을 휘감습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마력 +50
비가 세상을 씻어내릴 것처럼 내리며, 온 숲을 적십니다.
비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네요.
차가운 빗물이 상쾌합니다.
지금이라면, 아트미스가 가르쳐 준 것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놀란 사라트가 당신을 여기저기 살피지만,
투명해지고 있다는 건 아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 말고) …저게 뭐지?
아이가 숲 공터의 경계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익숙한 물체가 덩굴과 이끼 낀 돌, 나무들 사이로 보이네요.


커다란 회색 물체가 이끼와 덩굴들 사이에 고요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지의 입방체.


망태기.


<별의 가호> 주문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꼴보기 싫은 사람.) .. (빠안)
이거 타고 왔어요?

(이거 집까지 안 가고 계속 옆길로 새면 어쩌지... 고민에 빠짐.)



오빠한테 말하고 와도 돼요?




……안 들키면..? (말해놓고 고민..)



완전범죄를 해낼 자신이 없다면 시도도 하지 말 것.

… (고민…)





영영 못 만날 곳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떠나지 않는다면 어차피 만나야 할 걸.
그러니까 옆길로 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서, 멀리 떠나버리지 않을 이유 잘 붙잡고 살아 있어.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련히 찾아갈 테니.

잘 가요.
(다시 돌아서서 길 쪽으로 뛰어간다.)

(별의 가호 주문을 사용한다.)
주문을 사용하려고 마음을 먹자,
갑자기 입에서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이 나옵니다.
이성-1.
…
주문을 사용하자, 당신에게서 흰 빛이 나오더니…
정지의 입방체로 빨려들어 갑니다.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물체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열립니다.
안은 텅 비었으며, 사람 두 사람 정도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네요.
수리도 마쳤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입방체 안으로 들어가자, 문은 닫히고 물체가 투명해집니다.
투명한 벽 위로 빗물이 흐릅니다.
물체의 벽면에 숫자가 떠오릅니다.

순간, 숫자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커다란 나무들이 점차 시들어갑니다.
숫자가 더욱 빠르게 줄어들며, 세상은 당신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광합성을 멈추고, 사라졌던 나무들…
남색 호수에는 흙이 채워지고 도시가 세워지며,
커다란 건물들이 당신의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합니다.
철근이 점점 콘크리트로 덮이는 모습이 보입니다.
숫자는 이제 여섯 자리도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정부 건물이 세워지는 모습도 보이고,
이제 거리는 당신에게 완전히 익숙한 모습입니다.
…
그때, 정지의 입방체의 벽이 불투명해집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당신이 묵었던 병동.
자신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라트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
화면이 다시 빨라지더니, 사라트가 당신을 데리고 병동 밖으로 나가는 화면이 재생됩니다.
건네주는 라일락이 낮익네요.
화면이 다시 빨라지더니, 이번에는 처음으로 세계정부의 건물 앞에 섰을 때가 보입니다.
"사라트… …페르테나."
"뒤는 동료 과학자입니다. 실험 중이라 방독면을 벗을 수 없습니다."
…
다시 화면이 빨라지더니, 당신이 방아쇠를 당기던 화면이 재생됩니다.
정지의 입방체가 천천히 투명해집니다.
숫자가 떠오르네요.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방체의 문이 열립니다.
짧은 안내음이 나옵니다.
녹의 요람
END. 0
다시 미래로
유리, 크툴루 신화 +5. [생환]

이거 물어보러 좀 멀리서 왔으니까 신중하게 고민하고 대답해 봐.
항상 멀리 떠나고 싶었던 주제에, 더이상 떠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남지 않았는데도 어째서 떠나지 않았어?



떠나도 상관없었을 텐데, 굳이 살려내고, 끌어내고, 지켜보겠다고 움직인 건. (가만히 마주보다가 시선을 비스듬히 옮긴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숨이 돌까, 궁금해서.
(그럴듯한 이유 하나를 내어두고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선을 가늠했다.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상대가 살아갈 세상이 유지되도록 한 번은 노력해봐야 했다거나, 다시 못 볼 사람이 남긴 유지를 따라야 했다던가. 답하지 않을 말이 머릿속에서만 맴돈다. 차갑고 지겨워서 머무르고 싶지 않은 세계, 무엇을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세상에서 돌려놓아야 했던 숨은 내 숨이 아니라, …)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아주 똑똑하지는 않았나 봐, 너.

그래서 결과는? 숨은 돌던가?



(질문을 들었으니 조금 더 말해줘야 할까.) 네가 날 어떻게 보았는지는 알겠다만, 내가 꼭… 떠나지 않을 이유가 있어야만 머무르는 사람은 아니라서.
항상 멀리 떠나고 싶어했던 건 사라트 페르테나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다르단 걸 모를 네가 아닌데.)

더는 미련이든, 책임감이든, 무엇이든 남겨둘 필요 없다는 뜻이야. (아트미스에겐 참으로- 면목 없게도. 당신 기일에 술 한 잔 사는걸로 갚았다 칠까.)
이제 식물은 나 없이도 자라니까. 그렇지 않나.

…할 만큼 했으니까. 너도 떠날 거니.

(저녁 한 끼랑, 빌린 옷 정도면 얼마로 갚아야 하나. 헤아려보다가 그만두었다. 평생을 갚기엔 억울하니 이번에도 할 만큼만 하련다.)
언젠가 네 미련이 나타나면, 그 때는 붙잡는 것 정도는 도와주지. 너야 상대가 잡아줄 때까지 어찌할 바 모르고 기다릴 게 뻔하니까.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쉰다. 역시 쓸모없는 것을 기억에 넣었다. 쓸쓸한 낯을 마주보고 있자니 자그마한 사라트와 얼마나 변했는지, 그런 것들이 절로 눈 앞에 떠오르니.) 네가 내 이유가 되지 않더라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충분히 지쳤어도, 다행스럽게도 더는 세상에 갚을 것이 없어서...
이제는 꿈 속에 들어가지 않아도 쉴 수 있어. 재미있지 않나.

유리. (붙잡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묻지 않을 질문을 속으로만 생각하며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잡겠다고 손 뻗어도 제대로 잡힌 것이 하나도 없었어서. 몇 번을 그러고 나니 이제는 미련을 가지기도 쉽지 않다.) 누구의 기일을 말하는 거니.

네가 챙길 기일이 아트미스 페르테나 말고 있나. 빚 갚겠다 했는데 끝까지 거절했거든.



만났다면 알겠지.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내 미련은 그 과거에 있어.
보고 싶었는데.

(왜 친절한 낯의 아트미스 페르테나가 그리도 껄끄러웠는지, 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알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사는 내내 평생을 그리워할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리에 내가 있어서는 안 됐다는 기분이 든다. 같은 미련을 가진 사람이 그 기분을 모를 리가 없다. 세상에서 사라져서라도 영영 지워버리려 했던 미련이 고개를 치켜든다.) 그래서,
네게 물어봤어. 이유가 남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내 대답보다는 안제의 답을 알고 싶지만, (그는 그런 물음에 답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 …. 그래서.

답하던데. 사라트 페르테나가.
과거에 머무르든, 미련에 머무르든, 놓아버리려고 용쓰지 않아도 돼. 당장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열세 살 너를 잊고 살아가니까 그리 붙잡지 못하고 떠오르고 흘러가는 거다, 멍청아.

그러니 그런 것 말고. (연구를 거듭하고 남기지 않아도 될 메시지를 남겨가며 무언가가 세운 계획이 망가지도록 했다. 유리에게 찾아갔던 그것이 나를 온전히 남겨둘까. 그럴 리가. 더 확실하게 보복하려 들겠지. 다음 차례는, ……) 떠오르고 흘러가지 않을 수 있는,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면 내게도 알려줘. (돌아온 식물들이 예전과 다름없이 아름다워서,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모르겠어. 아꼈던 것이 돌아왔지만 그 시절 아끼던 마음까지 그대로 돌아오지는 않았으니.)
언젠가 내게 다른 미련이 생겨 도움이 필요해져도 … 쉬는 걸 다시 방해하지는 않을 생각이라. 이번에는 부르지 않을 거야. 능력껏 알아채 봐. 네가 내킨다면.

하는 김에 겸사겸사, 내 휴가가 아주 평온하길 빌어줘. (지루해 죽을만큼,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다시 맘먹을 만큼 따분한 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돌아온 식물들을 살피면서 이게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끼고 살았나 고민도 해 보고, 더이상 먹어줄 사람이 없는 식사를 공들여 만들어 보고,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늦잠을 자며 게으름을 피워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결심대로 은혜도 갚고, 원수도 갚고. 사람이 은혜 갚는 학도 아니고 좋은 일만 갚으면 쓰나. 성가시게 하던 놈들 싹 찾아내야지. 찾아서 조져야지. 멋진 휴가 계획이다.)
그동안 아무리 의욕이 없어도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않고 살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 같아. 응. 깨끗하게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가까운 시일 내로는 못 간다.



….
문은 부수는 게 아니고 여는 거다.
(이런 말이라도 안 해두면 어느 날 갑자기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아서.)
잘 지내렴. 내 소식은 … 내키면 알리도록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