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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29

2023-03-27

식물이 사라진 2054년의 지구.

장르: CoC

감독:

출연: 사라트 페르테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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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29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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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면, 식물이 무성한 정글입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미로처럼 얽힌 잎사귀들 사이로 초록빛 햇빛이 들어와 당신을 영묘하게 비추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유리: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곳은 당신이 항상 돌아오는 익숙한 장소.
정글에는 그 어떠한 생물체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끝없는 식물이 있을 뿐입니다.
유리:oO(풀이고... 풀이네...)
(매일 매 시간 생각이 너무 많은 삶을 살아와서 그런가, 무성한 식물들을 맞닥뜨리면 그 순간부터는 생각을 놓아버린다. 행동도, 계산도, 죄다.)
(한참을 걸어도 끄떡 없을 체력을 가진 주제에, 현실이었더라면 도대체 이곳이 어떻게 되어먹은 곳인지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헤매고 다닐 성격인 주제에, 꿈 속에서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성의 없이 주변을 거닐다가 적당한 풀밭을 찾아내자 털썩 누워버린다. 생각을 멈춘 세계는 이렇게나 고요한데.)
주변을 거닐다 보면, 나무들의 이름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윔바, 브라질 넛, 마호가니, 루푸나, 피커스.
모두 아마존의 정글 나무입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긴 풀들이 다리를 간질이고, 흙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하지만,
정글은 바람이 불 때마다 풀들이 스치며 나는 싱그러운 소리를 제외하면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나가다 털썩 누워버리면, 저 멀리 ... 정글의 중앙에 있는 호수가 보입니다.
유리:(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렇게 평화로운가...)
(아니다. 사람이 몇 명이 있든 언제 신경이나 썼다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지킬 것이 없어서 평화롭다. 나를 포함해서.)
(몸을 일으켜 앉아 머리카락을 툭툭 털고 호수를 빤히 바라본다.)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몸을 일으켜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 호수의 표면에 자신을 포함한 그 어떠한 사물의 모습도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투명하고 맑지만 기이하게도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물입니다.
유리:(연산을 멈춘 채로 바라보는 탓인가, 호수가 특이하네. 감상은 그게 끝이다. 물에 들어가면 어떨까 궁금하기야 하지만 더 일어나기 귀찮은 감이 없잖아 있다.)
rolling 1d2 (1:들어간다 / 2:다음으로 미룬다)
(
2
)
=
2
(다시 누웠다.)
(대체 뭐하는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이 있다면 다음에 들어가면 될 일이고, 없으면 바라보지 않으니 생각조차 나지 않을 테지.)
다시 누웠습니다.
당신이 풀밭에 몸을 눕히자 호수의 물이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합니다.
호수의 물이 불어남과 동시에,
호수 주변의 나무들부터,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나무들은 계속 시들더니 점점 재로 변해가며,
호수의 물은 재가 된 나무들을 삼켜가며 차오릅니다.
땅의 풀을 적시며 낮게 찰랑이던 물은 어느새 몇 센티미터 위까지 차올랐습니다.
유리:oO(우와.)
(일어나기 귀찮았는데 잘됐다는 생각만...)
일어나기 귀찮았는데 잘되었습니다.
잡을 것도, 발을 올릴 곳도 없고, 일어날 생각도 없고...
익숙한 꿈. 푸른 정글 안에서
물이 서서히 머리 위로 차오릅니다.
낯선 고통이 당신을 덮칩니다.
유리: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74
판정결과: 실패
이성 - 1
유리:oO(생각해보니 열받네 왜 꿈에서도 고통을 겪어야 하지)
(사고가 사라지자 보다 즉각적인 분노만 남았다.)
생각해보니 열받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당신의 몸 위로
햇살이 보내는 옅은 푸른빛이 비칩니다.
의식을 잃었던 당신은 어딘가 엉성한 흰 침대 위에서 눈을 뜹니다.
유리:(왜 어딘가 엉성하지)
◈:왜 어딘가 엉성하지?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7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주변을 살피면 이곳은 닫힌 창문이 하나 있는 1인실로 보이는 병동입니다.
당신은 환자복을 입고 있습니다.
침대 옆에 붙어 있는, 시간이 지나 색이 바랜 자신의 이름표가 보입니다.
유리:...?
(피 부족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잠깐 들었다가...)
유리: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또 식물이 무성한 정글의 꿈을 꾸었던가요.
당신은 현실에서 식물의 환상을 보는 병을 앓아,
이곳에서 오래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모든 식물이 멸종된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창가의 철제 라디오에서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 모든 식물종의 멸종 이후, 인간 종에게 남은 산소는 천 년을, 정확히는 1014년을 겨우 남길 양이며 이는 동물종의 개체수를 생각한다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유리:(아. 그랬지. 뒤늦게 의식이 깨어나며 기억이 돌아온다. 너무 선명한 기억력이 드디어 뇌를 돌아버리게 했나, 그런 의심이나 하고 있지만...)
왜 하필 식물이지.
왜 하필 식물이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앉아있자면
찰그랑.
아래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유리:? (아래를 바라본다.)
바닥에 고정된 침대의 다리와 당신의 다리를 연결해 묶어 둔,
쇠사슬의 소리입니다.
당신은 이 쇠사슬 때문에 병실의 문까지 갈 수 없고,
1인실의 닫힌 창문을 겨우 열 정도의 거리까지밖에 갈 수 없습니다.
침대 다리에 고정된 쇠사슬을 바라보자, 순간 쇠사슬의 틈새에 이끼가 자랍니다.
유리:... (미간을 찌푸린다. 또.)
치료고 뭐고 그냥 돌팔이들 아닌가. (솔직.)
돌팔이들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닫힌 창문 너머로는 거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보이는 시계탑의 시간은 분명히 정오 즈음이지만,
하늘의 해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지 않습니다.
솔직한 말을 중얼이고 있으면...
병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유리:(성격 대로라면 그냥 문을 벌컥 열고 나가서 뭐냐고 눈썹을 찌푸렸을 텐데, 병실 문까지 닿질 않으니 별 수 있나. 가만히 귀만 기울인다.)
유리: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문 밖에서 들리는 건... 당신을 담당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와,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곧 1인실의 문이 열립니다.
병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당신의 담당 간호사와, 하얗고 익숙한 낯의 …
사라트?
몇 년만에 보는 얼굴입니다.
입원한 뒤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사라트:….
간호사는 사라트에게 종이들이 들어 있는 파일 하나를 넘기고 방을 떠납니다.
파일의 겉면에는 29번 환자 차트라는 글과,
당신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사라트:잘 잤니. (몇 해만에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말이 이런 말이다.)
유리:... (사라트네. 기억이 워낙 선명해서 그런가, 놀라거나 반갑거나, 그런 감정보다 기억과 다른 점을 찾아내는 것이 더 빨랐다. 머리가 좀 길어졌거나, 얼굴은 신기할 만큼 변하지 않았거나...)
(그러다 보면 감정은 피어난 줄도 모르는 새에 사라지기 일쑤라서 이쪽도 영 반응이 심심하다.) 3년 전을 얘기하는 거야, 오늘을 얘기하는 거야?
사라트:… (3년 전도 물어봐야 할까. 몇 초간 침묵하다가 느릿하게 말한다.) 오늘. (침대에 소리없이 걸터앉는다. 침대 주인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고개 조금 기울이고..) 3년 전도.
유리:그럭저럭. (잘 자다 말았다. 꿈에서나마 푹 쉬다가 방해로 깨어났으니 어쨌든 반은 잘 자고 반은 못 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합쳐서 그럭저럭이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 있지? 그걸 의문으로 삼는다면 왜 없었는지도 의문점이 되어야 하는데, 있으나 없으나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입 밖으로 나오는 질문이 터무니없이 짧았다.) 왜.
사라트:(왜. 그 한 마디에서 생략된 의문을 읽어냈지만, 상대가 소리내어 묻지 않은 것들을 굳이 답할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세계정부의 과학자가 되었어. 세상에서 사라진 식물들을 다시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고. (그리하여, 곧 필요해질 정보들만 답하고) 인사는, … 이제 막 깬 얼굴이기에.
유리:하... (돌팔이들에 한 명이 추가됐구나. 재회한 친구에 대한 감상은 그 뿐이다. 이제 다시 보겠구나. 그 사실을 반가워하거나 기뻐하기에는, 글쎄, 그리고 다시 사라질 텐데.) 식물을 다시?
이제와서,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실현 가능성이 있는 임무인가?
사라트:글쎄.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임무라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까 잠시 떠났던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사라트를 손짓으로 부릅니다.
사라트는 당신의 환자 차트를 침대 위에 올려두고 잠시 방을 비웁니다.
유리:(차트 자연스럽게 넘겨받은 것처럼 집어들고 읽어본다.)
이건 읽으라고 두고 간 건지.
환자 차트를 펼치자
왼쪽 면에 당신의 사진과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성별, 나이 등 기본적인 신상 정보들도 쓰여 있네요.
오른쪽 면에는 조금 다른 종이가 자리합니다.
병원의 서류네요.
경과 노트라고 쓰여 있습니다.
유리:(마치 내 차트인양 자연스러운데 내 차트 맞지 않나? 노트를 팔락팔락 넘기며 훑어본다.)
내 차트 맞지 않나?
핸드아웃 공개 - 경과 노트
유리:돌팔이들...
경과 노트를 읽고 나자 간호사가 1인실의 문을 열어주고, 사라트가 다시 안으로 들어옵니다.
사라트:(...) 들으라고 하는 소리니. (손에 들려있는 차트를 물끄러미 보다가 제게 달라는 듯 손을 내민다.)
유리:(도로 덮어서 건네준다.) 입원했을 때부터 기대를 놓고 정신 의학 공부를 했으면 내가 직접 치료하는 게 더 빨랐어.
사라트:지금부터 하는 건? (차트를 받아 근처에 내려두고 몸을 굽혀 유리의 발목에 손을 대다가) 긁힌다. 움직이지 마. (사슬을 풀어낸다.)
찰그랑. 발목을 묶고 있던 사슬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사라트:(걸을 수는 있나? 무표정으로 물끄럼...) ... (한 손을 내민다.)
유리:글쎄... (심드렁한 낯으로 성의 없이 대꾸하고는 가만히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손을 지나쳐 가볍게 몸을 일으킨다. 새삼 비틀거릴 것 같지는 않다.) 괜찮아. 죽을 병으로 입원한 것 아니니까.
사라트:(비틀거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미련 없이 손을 거둔다.) 나가자.
유리:어디로?
사라트:바깥.
여기 계속 있을 거니. (표정에 돌팔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다 쓰여 있다만... 말로도 했군.)
유리:그래, 안에서 나가면 다 바깥이긴 한데. (그걸 묻는 게 아니지요. 라고 다 쓰여 있는 표정으로 봄.)
사라트:(지금은 못 말한다는 표정으로 마주본다.)
... (무표정이다. 알아서 해석하겠지. 몇 년을 봤는데.)
유리:(3년 만에 알아서 해석해야 하는 무표정 봄.)
잘도 이걸로 설득되라고...
사라트:
설득
기준치: 60/30/12
굴림: 65
판정결과: 실패
유리:(설득 안 됐다.)
사라트:(행운 15지만 5 깎습니다.)
유리:(행운 5와 10 되게 생겼다.)
사라트:… 싫어?
유리:...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어떤 설명도 설득도 없이 그저 따라오라고 하는 옛 친구의 말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이유는 없다. 딱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온통 돌팔이들이라는 사실이 짜증난 참이고, 오랜만에 만난 얼굴이 참 변함 없이 그대로라서, 그 위로 드리운 조각난 햇빛 따위가 조금 마음에 들어서...)
아니. 가지. (단지 그 정도 이유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런 날도 하루쯤은 필요하지 않나.)
사라트:(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정말 따라와 줄 줄은 몰랐다.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1인실 밖으로 나오자,
병원의 모습이 한 눈에 펼쳐집니다.
병원은 깔끔하며, 홀로그램이 길을 안내합니다.
사라트:(앞서 걸어가다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설명할게. 지금은 못 하더라도. (돌아보며 입고 있던 흰 가운의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라일락 조화를 꺼내 내민다.)
나갈 때는 꽃을 선물하는 거라고 배웠어.
유리:(조화를 받아들고 고개를 기울였다가, 처음 하는 설명이란 것이 엉뚱하면서도 충실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너 치고는 분발했군. 고맙게 받지.
사라트:(나 치고는?) 그래.
걸음을 옮기다 보면 병원의 엘리베이터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엘리베이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로 만들어져 무광이며, 반투명합니다.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합니다.
사라트:(먼저 들어가라는 듯 눈짓한다.)
유리:(보라색 머리에 보라색 꽃을 들고 걸어다니는 사람 됐다. 원래 말이 많은 사이는 아니었으므로, 의사소통의 대부분이 표정으로 이루어지는 기분이지만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겨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엘리베이터의 안에는 버튼이 하나도 없지만,
사라트가 엘리베이터의 벽 어딘가를 누르자
손가락이 닿는 곳이 눌리고,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합니다.
1층은 병원이 아니라, 창문 너머로 보이던 거리입니다.
거리에는 홀로그램으로 된 사람들과 고급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섞여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사라트:(묵묵히 걷다가) 삼 년 만이니.
(스스로도 말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한 마디 더한다.) 바깥.
유리:그러네. 그다지... 달라진 건 없지만. (사라트를 다시 만났을 때와 같다. 기둥에 새겨진 작은 균열 하나가 늘어났고,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의 색이 달라졌다. 기억과 다른 것을 순식간에 찾아내고 나면 별 감흥이 들 것도 없다.)
사라트:너도. (달라졌나. 말이 조금 더 적어졌고, 머리카락은 ... 삼 년 전에 본 사람의 머리카락에 생긴 미세한 길이 변화까지 알아챌 정도로 관찰력과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
사라트는 곧 당신을 이끌고 거리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길거리는 쓰레기 한 점 없이 무결하게 깨끗하고,
고층 빌딩의 회색빛 벽에 설치된 설치형 홀로그램에서는
세계정부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스크린을 관찰하자, 최근에 즉위한 새로운 세계정부의 수장이 발표를 하던 참입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세계정부의 과학실로 초대했으며,
현재 인공 식물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스크린의 옆면에는 사람들의 얼굴이 주욱 뜹니다.
실험실 가운을 입은 모습인 걸로 보아 아무래도 아까 설명한 과학자들의 얼굴 같습니다.
빠르게 넘어가는 얼굴들 사이 사라트의 얼굴이 얼핏 보인 것도 같습니다.
유리:오, 소수정예. (웃으며 옆에 있는 얼굴 본다.)
사라트:(놀리는 거군...) 유리….
놀리는 거니. (한숨을 삼키고) 너는 하지 마. (반은 진담, 반은 농담.)
유리:왜 그렇게 생각해? 네가 어디 가서 빠진 적이 없었는데 사실 적시 아닌가. (발화자가 문제라면 조금 문제지만) 그러고 보니 질문에 답하다 말았지. 실현 가능성이 있기는 하느냐고.
사라트:(발화자가 너잖니.) 그 말을 네가 해서 문제인 거란다. (삼 년 전보다 아주 미미하게 솔직해진 것 같기도 하다.) 실현 가능성은 있어.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때, 사라트의 목을 타고 얇은 담쟁이가 자라납니다.
유리:...아. (무심코 손을 뻗어 담쟁이를 걷어내듯이 목 위로 손가락을 움직인다.)
사라트:..?
사라트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면
담쟁이는 곧 재가 되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집니다.
사라트:…음. (조금 늦게 이해했다. 보였나.)
유리:... 사라졌네. (별다른 변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무언가 보였다는 설명으론 충분하지 않나. 벌레든, 먼지든, ...식물이든.)
그래... 가능성을 찾아낸 게 놀랍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없었는데.
잘하면 세상을 조금 더 구하겠네. 힘내봐.
무채색의 딱딱한 거리를 조금 걷다 보면,
거리의 끝에 거대한 빌딩이 보입니다.
거대한 회색 빌딩에는 창문조차 하나도 없네요.
빌딩의 꼭대기층 부근에는 익숙한 세계정부의 문장이 검은색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세계정부 문장의 바로 아래에는 홀로그램으로 된 스크린이 보입니다.
아까와 동일한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사라트:세상을? (내가 세상에는 관심 한 톨 없었단 걸 알 만큼은 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날도 오는군.) … 그래야지.
빌딩 앞에 도착하자, 사라트는 가방에서 방독면 하나와 자신과 같은 연구실 가운 하나를 꺼내어 유리에게 건넵니다.
유리:(20년간 방독면만 써본 사람처럼 익숙하게 슥 쓰고 가운을 받아들어 걸친다. 20년간 연구만 한 사람같은 인상이 되었다.)
유리가 가운을 걸치고 방독면을 익숙하게 쓰는 것을 확인한 후,
사라트는 말을 하지 말라는 듯이 자신의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댑니다.
유리:(어깨만 으쓱)
사라트는 빌딩의 벽에 부착되어 있는 작은 버튼을 누릅니다.
버튼을 누르자, 순간 한 홀로그램의 모습이 지직대며 나타납니다.
"이름은?"
사라트:1
사라트… …페르테나.
유리:... (쳐다봄)
사라트:뒤는 동료 과학자입니다. 실험 중이라 방독면을 벗을 수 없습니다.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한다.) 함께 출입해도 괜찮겠습니까. 출입증은 연구소에 두고 나왔습니다.
사라트의 말이 끝나자, 홀로그램은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곧 치직거리며 사라집니다.
문 하나 없던 빌딩의 벽에 갑자기 문 모양의 금이 생기더니,
아까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듯이 치직거리는 노이즈를 띄우고
출입구를 만들어 줍니다.
빌딩 안에는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사람들의 반은 가운을 입고 있으며,
나머지 반은 정장을 입고 있습니다.
바깥과 다르게 홀로그램은 없네요.
모두 목에 출입증을 매고 있습니다.
유리:(사라트의 목 언저리만 한 번 훑어보고는, 주변에는 큰 관심이 없는지 고개를 돌려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왜 페르테나야?
사라트:… 그게 중요하니.
빌딩 안의 시설은 무척이나 발달되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계들이 즐비하며,
인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듯한 차가운 공기가 빌딩 안을 채웁니다.
사라트는 당신에게 가까이 붙어 이끌며,
지나가는 과학자들과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넵니다.
인사를 건네는 한 과학자의 손에 클로버가 듬성듬성 나 있습니다.
이것도 당신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이겠죠.
사라트:(그래도 물어보았으니 답은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네가 페르테나라고 불렀잖아. (겨우 한 문장 더 내뱉곤 짧게 시선을 두다가 다시 앞을 바라본다.)
빌딩의 안쪽에는 병원에 있던 것과 동일하게 생긴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사라트:부족할까. (한 문장 답했으니 왜 페르테나인지는 알아서 해석하라는 것처럼 또 조용해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이번에는 먼저 들어선다.)
유리:부족한데... (뭐어. 가볍게 한숨을 쉬고 따라 걸음을 옮긴다. 성큼, 한 걸음 뻗고는) 나니까. 이해해보지.
곧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29층이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29층에 도착하자 1층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집니다.
일반 호텔처럼 방들이 복도를 따라 나열되어 있지만,
방들에는 번호 대신 은색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사라트는 당신을 이끌고 맨 끝의 방으로 향합니다.
사라트:(출입증을 꺼내 명패 앞에 가져다댄다.)
문이 열리면, 사라트는 당신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합니다.
유리:(안으로 들어선다.)
사라트:(유리가 먼저 들어가고 난 후, 주변을 살피고 들어서며 출입증을 다시 문 주변에 가져다 대어 문을 닫는다.) 왜 ….
(순진하지는 않고, 그리 무르지도 않았는데.) 무얼 믿고 설명도 안 했는데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을까.
유리:(어떤 답을 꺼낼까,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납득이 될 만한 것, 적당히 넘길만한 것, 다가오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것, 내지는 진실, 또 다른 건... 피식 웃는다.) 네가 가자고 했잖아.
(방금 전의 유치한 복수도 있고.)
사라트:……………….
유리, 몇 살이지? (방금 전의 복수인가?)
길게 끌지 않아 편하기는 했다만. (방독면을 벗어도 된다는 듯 손짓한다.)
온통 흰 벽인 사라트의 방 안은 무척이나 넓고 깔끔합니다.
한 면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책장이며,
한 면에는 거대한 컴퓨터가 얹어져 있는 책상이 자리합니다.
책상 위에는 이런저런 과학 실험 도구들도 나뒹굽니다.
침대는 간소한 사이즈이며,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방의 다른 면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습니다.
세계지도는 오직 바다의 푸른 색만이 표현되어 나머지는 흑백으로,
초록 빛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유리:안타깝게도 너는 내가 아니라서... (방독면을 벗고 드러난 말끔한 얼굴 위에는 뻔뻔한 미소가 자리잡고 있다. 다소 어색하게 말끔한, 태연한 낮이다.) 이해하려면 설명이 더 필요한가?
사라트:왜 웃지? (답변보다 먼저 튀어나온 의문)
유리:너희들은 자주 망각하는데 원래 잘 웃었다.
사라트:…….
그렇군. 설명은 필요 없어. (이해 안 하고 말지.)
유리: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마.
사라트:열 몇 살까지 특기가 포기고 취미가 체념이었는데 이제 와서 뭘…. (아니었다.)
유리:내 기억과는 다른 면이 있는데 언제 새로 태어났던가?
사라트:삼 년 전쯤 새로 태어났다 하지.
계속 서 있을 거니. 앉아. (존재감 없이 놓여있던 소파 쪽을 가리킨다.)
유리:(소파를 흘깃 바라보고는 앉는 대신 방 주위를 천천히 돈다. 책상 앞에 걸음이 멈췄을 때는 나뒹구는 실험 도구를 하나씩 일으켜 세워 모아서 정돈한다.)
새로 태어난 것에 가깝긴 하지. 세계 정부에 가장 관심 없을 이가 너였는데.
사라트: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생겨서.
보고, 관심을 두고, … 맞지도 않는 자리에서 쓰지 않으려던 성까지 쓰려면 그만한 이유는 있어야겠지. (방 주위를 도는 상대를 따라 시선이 이동한다.) … 아.
밖에서는 말을 조심하렴. 듣는 귀가 많아.
유리:아, 그래. (차라리 강제로라도 붙들려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았던 사람은 이 모양이다. 말했으니 듣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설핏 들어 넘기고 잊어버릴 리도 없지만, 정말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없다는 듯한 심드렁한 어투. 책장 앞에 도달했을 때는 꽂혀 있는 책들의 제목을 훑어본다. 그나마 방 주인의 성격을 알 만한 것이라면 이정도일까 하며 살펴본 것인데 그마저도 연구에 관련된 서적만 빼곡하니 성과는 미미했다.)
그럼 무엇에 관심이 생기셔서.
사라트:……… 인류의 평화라고 해 둘까.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를 소리내어 말하곤 미미하게 웃음짓는다. 책장을 보고 있으니 웃음은 보이지 않겠지만.)
왜 이곳으로 데려왔는지는 묻지 않는군.
유리:아. (물어봐야 했나.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대꾸해본다.) 상관 없어서.
어디에 있으나 꿈에는 정글이 튀어나올 테고... 낮에는 할 일이 있으면 네가 어련히 시키겠지. 안 그런가?
사라트:그렇겠다만 … 네 거처와 안전에 조금 더 관심을 두도록 해. (제가 할 말인가 싶기는 했다.)
세계정부가 너를 탐탁지 않아 한다.
유리:오.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다소 의아하고 약간 억울해짐.)
사라트:아직?
무언가 할 예정은 있었다는 말이니.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지.) 돌아다니려면 방독면과 가운을 챙겨.
유리:그래... (100m 밖에서도 눈에 띄는 운명을 순응한 편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식물들을 다시 세상에 불러오기로 했다더니, 식물의 꿈을 꾸는 것도 문제가 되나.
사라트:아, 그거 말인데.
세계정부의 지원 하에 세계 곳곳에서 선발된 가장 실력이 출중한 과학자들이 모여 인공 식물종들을 연구하고 있다, 고 발표되었던가.
현재 진행중인 연구로는 불가능해.
에서는 말하지 마.
유리:알아. 그런데 된다며. (봄)
이제 와서 가능할 리가 없지.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대적으로 쇼를 한다는 건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는 뜻이고.
그건, (아, 귀찮다. 고개를 돌리고 기어이 한숨을 쉬었다. 걸음을 옮겨 소파에 앉았다.) 알아서 해. 원하는 대로 써먹어도 되고.
사라트:써먹어도 돼?
유리:...안 되나?
사라트:(이제 와서 묻는다.)
….
알아서 하라니 네가 죽지는 않게 하마.
유리:그것 참 신뢰가 가는 군 그래...
유리: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무표정에서 더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사라트:(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음. (책장 가까이로 걸어간다.) 이제 앉았는데 일어나라 해야겠어.
사라트가 책장에 꽂혀 있는 한 짙은 초록색 책을 뽑자,
순간 책장 전체가 일렁이더니 홀로그램처럼 지직이며 사라집니다.
유리:뭐야? (뭐야?)
사라트:잘 시간이거든.
유리:몇 살이지.
사라트:스물여덟 살 유리, 잘 시간이다.
나는 일. 너는 잠. 들어가. 네 방이야.
… 아. (나는 필요 없지만 상대에게는 필요할 것 같기도 한 것을 떠올린 .. 무표정.) 식사 필요하니.
유리:됐어. (신체에 필요하냐 불필요하냐 굳이 따지자면, 이 덩치를 유지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먹어왔으니 필요하겠지만.) 생각 없어.
일인지 잠인지 시키시는 대로 하지.
책장 너머의 조그마한 공간에는 작은 침대 하나와 전등 하나가 있습니다.
침대맡에는 책들도 몇 권 있습니다.
사라트는 들어갈 때는 이 책을 뽑아야 하지만 나올 때는 그저 책장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하고 걸어 나와도 나올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사라트:(왜 고분고분하지?) …그래.(어쩐지 미미하게 떨떠름한 목소리) 잘 자렴.
책을 읽어도 괜찮고, 바로 자도 괜찮습니다.
책을 읽을 시엔, 첫 권 이후로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려운 정신력 판정을 합니다.
유리:(뭐야 재밌겠다 읽읍시다)
◈ :3
핸드아웃 공개 - 작은 수첩
유리:...선물?
(읽으면 안 되는 걸 넣어놓고 자라고 했을 리는 없고. 수첩을 도로 내려놓은 뒤 손에 잡히는 대로 다른 것을 펼쳐 읽는다.)
유리: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또렷하네)
:2
핸드아웃 공개 - 스크랩북
유리:... ... ... ...
... ... ...?
졸려서 헛것이 보이나. 사라트 페르테나가 이런 스크랩북을 만들고 있을 리가 없는데. (다시 있던 자리에 치워둠)
(정신이 영 맛이 갔나 의아한 상태로 다른 걸 펼쳐본다.)
유리: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음...
왠지 눈꺼풀이 조금 무겁습니다.
있을 수 없는 걸 보아서 피곤해졌나...
유리:(역시 졸려서 헛걸 봤나보다... 잠이나 자자...)
남은 책 한 권의 제목은 [정글 나무 대백과]
다 아는 나무일 것 같기도 하고... 잠이나 자자.
유리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잠에 들자, 다시 한번 꿈이 펼쳐집니다.
거대한 나무들의 미로처럼 얽힌 잎사귀들 사이로 초록빛 햇빛이 들어와 유리를 영묘하게 비추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유리:This message has been hidden.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4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항상 반복되는 꿈에서,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챕니다.
나무들은 오늘따라 아름답습니다.
그리운 모습인 걸까요?
꿈으로나마 볼 수 있는 과거의 잔재에
알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 느꼈을까요?
평화롭습니다.
유리:(왜이렇게 의문형이야)
:안 느꼈을지도.
유리:(의심하지마)
끝없이 펼쳐진 정글을 따라 조금 걷자, 발에 무언가가 채입니다.
유리:... (꿈이 그렇지. 어딘가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일단 걷고 있었으니 마저 걷고 있던 참이다.)
...? (내려다본다.)
발에 채인 물건을 살피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검은색 철제 큐브입니다.
큐브에서는 갑자기 연기가 나오더니,
지직대며 연기를 스크린으로 삼아 제 위로 어떤 영상을 띄웁니다.
영상에는 아침에 깨어 있을 때 본 세계정부의 방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세계정부 측에서는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진 각국의 가장 유망한 과학자들을 세계정부의 과학실로 초대했으며,
현재 인공 식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유리:... ...뭐지? 이건 마음에 안 드는데. (툭, 발 끝으로 큐브를 건드린다.)
기억을 깨우지 마. 그건 깨어 있는 동안으로 충분하니까.
순간, 연기에 비친 세계정부 수장의 모습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세계정부 수장의 살이 녹아내리더니
살 아래의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드러납니다.
털이 하나도 없는 젤리같은 모습이네요.
끔찍하고 역겹게 생겼습니다.
저런 것은 절대로 인간이 아닙니다.
...
그러나 곧 연기가 흩어져 확실한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유리: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유리, 이성 - 1
유리:... (못생겼다.)
못생겼다.
유리:(너무 흉측한 것을 봐서 정신적인 피해가 좀 컸다.)
연기가 흩어지고 나자, 그제서야 발 아래 차오른 물이 느껴집니다.
물은 빠른 속도로 차올라 발목을 적시고, 무릎과 가슴, 어깨를 지나...
머리 위까지 차오르려 합니다.
나무들은 서서히 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잡을 것도, 발을 올릴 것도 이 정글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결국 물이 머리 위까지 차오르면,
예상했을 고통이 당신을 덮칩니다.
유리:에라이 (험한말)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 -1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유리의 몸 위를 햇살이 보내는 옅은 푸른 빛이 비춥니다.
...
눈을 뜨자 다음 날입니다.
당신은 책장 뒤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어제의 기억이 밀려들어옵니다.
방 밖에서는 인기척이 ...
느껴지지 않네요.
유리:(책장 뒤에서 슥 통과하고 나와서 방 안을 둘러본다.)
책장을 통과해 나오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사라트가 보입니다.
흑백의 세계지도를 미묘하게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리:(똑똑, 책장 옆을 노크하듯 두드린다.) 사라트.
사라트:… (고개를 돌린다.) 아, 유리.
잘 잤니.
(인사는 꼬박꼬박.)
유리:어제랑 같아. 너는? 자긴 한 건가?
사라트:눈은 붙였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국수, 스프, ... 고기, 샐러드, ... 에너지 바.
(식사 메뉴 선택하라는 의미다.)
유리:아침부터 고기는 좀 그렇지... 불고기덮밥.
사라트:?
그래. (꾹꾹. 문 옆의 무언가를 눌러 메뉴를 주문하고 소파로 가 앉는다.)
유리:(밥이랑 같이 먹으면 뭐든 안 부담스러워지는 한국인 마인드.)
곧 문 밖에서 맑은 벨 소리가 울립니다.
사라트는 일어서서 배달된 메뉴를 가지고 오네요.
사라트:(어쩐지 존재감 없이 구석에 놓여있던 2인 탁자에 불고기덮밥 그릇을 올려놓는다.)
유리:(왜 2인용이 하나씩 존재감 없이 있는걸까)
(아무튼 밥이 나오면 된 거지. 자리에 앉아 점심이라도 먹는 기색으로 무거운 불고기 덮밥을 가볍게 먹기 시작한다. 누가 보면 아침 시리얼이라도 먹는 듯한 가벼움이다.)
... ... 역시 병원 밥은 맛이 없어. (쯧. 혀를 차고 덮밥 먹기가 아니라 덮밥 마시기로 전환했다.)
사라트:(컴퓨터 화면을 끄고 일어서 탁자 맞은편에 앉는다. 잘 먹네. 한 그릇 더 주문할 걸 그랬군.)
(물병과 컵도 꺼내놓는다.) 맛없는 걸 잘도 삼 년이나 먹었구나.
유리:...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낮은 웃음소리를 내고) 그 식사를 참아주는 건 확실히 두 번은 못 할 짓이군.
(한 그릇 마셨으니 그럭저럭 만족한 기색으로 컵에 가득 차도록 물을 따른다. 차를 마시듯 조금씩 홀짝이며) 안에, 수첩이며 스크랩북이며 쌓여 있던데. 직접 만든 건가?
사라트:(그게 궁금했나. 라고 쓰여있는 듯한 무표정.) 스크랩북은 받았단다.
(수첩에 대해서는 첨언하지 않았다.) 다 마시면 … 산책이라도 갈까.
유리:다행이네. 드디어 영영 미쳤나 의심할 뻔 했잖아.
... (대놓고 이름이 쓰여진 수첩이 남의 것일 리는 없고. 내용을 한 글자씩 떠올려보다가 어깨만 으쓱였다.) 방독면을 쓰고 걷는 것도 산책이라고 하나, 요새?
사라트:방금 전까지 의심했다는 의미니.
(고개를 느슨하게 기울였다.) 가기 싫으면 말고.
유리:가. 재활에 가깝겠지만.
(물을 한번에 털어 넣고 잔을 내려놓는다. 일어나 방독면을 집어들다가 설핏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데 너 일은?
사라트:내 상사도 안 하는 말을. 오전에 할 일은 마무리했으니 나가도 된단다. (가운을 걸친다.) 금방 돌아와야겠지만.
유리:날 상사로 안 만난 걸 감사히 여겨. (아무래도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럴 듯 하다.)
사라트:네가 상사인 직장에 내가 들어가겠니.
유리:(산책, ...어딜 둘러보나 알아서 식물이 자라나니 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살았던가. 어느새 생경해진 단어라 헛웃음을 흘리고 방독면을 착용한다. 가운을 걸치면 어제 그대로 연구실에 20년동안 처박혀 있던 몰골이다.) 부하 직원으로 들어와도 말 안 들을 거면서 생색은.
사라트:부하 직원으로 들어가면 말을 듣겠지. 듣고 싶을 때만. 나가면 건물 안에서는 소리내지 마. (빈 그릇을 들고 방 밖으로 나와 문 옆에 있던 카트에 그릇을 올려놓는다.)
유리:봐서. (까딱하면 조용히 안 있을 가능성 77%)
사라트:….
유리의 발언을 의식했는지,
사라트의 걸음이 조금 빨라진 것 같기도 합니다.
유리:(원체 보폭이 커서 평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긴 복도를 지나면,
어제 보았던 빌딩 문이 보입니다.
사라트:(문 앞에 서서 돌아본다.)
유리:(뭐? 하는 눈으로 어깨만 으쓱)
사라트:(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빌딩 문을 나섰다.)
빌딩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면
사라트는 그제서야 입을 엽니다.
사라트:방독면 벗어도 돼. 여기서는.
(주변을 살피다가) 벗고 싶지 않다면 그대로 있고.
유리:예쁜 얼굴 꽁꽁 싸매고 다니는 취미는 없어서.
사라트:이 가로등부터 저 앞, 구부러진 구조물 옆의 벽까지는 괜찮아. (구체적)
유리:(방독면을 벗고 이야기한 구역을 슥 훑어본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또.
아는 대로 말로 해. 숙지하지.
사라트:1500m 앞 건물 왼편의 골목. 골목 입구부터 마지막 가로등 전까지.
네가 나온 병원 우측의 구조물 주변 3m. .. 다만 그쪽은 지나는 사람이 많으니 웬만하면 가지 마.
유리:있잖아, 살아남은 쥐새끼도 이거보단 활동 반경이 넓을 거야.
사라트:다른 구역까지 감시 카메라 권한을 탈취하자니 보안이 만만치 않아서.
유리:덕분에 100보에 한 번 공간이동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만 감사해야겠지?
사라트:다른 길은 방독면 쓰고 다니렴.
너는 쥐보다 크잖니. 눈에 띄니 어쩔 수 없어.
유리:너무하네. 30cm 좀 안 되는 키인데.
160cm쯤
사라트:헛소리가 늘었군.
주변을 훑어보면, 공원처럼 보이는 공간입니다.
식물은 하나도 없지만.
사라트:근처 공원 세 곳은 밤에만 카메라가 작동해. 산책 가고 싶으면 낮에 가.
유리:그래... (도시 전체의 감시 카메라 정보를 외우게 생겼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그러려니 싶다.)
사라트:(도시 전체의 감시 카메라 정보를 외우라고 하고 있지만 상대가 유리니 상관없겠지 싶다.)
유리:(시야는 병원을 지나 저 멀리, 집이 있을 방향을 가만히 응시한다. 졸업 직후에 독립해서 죽 한 곳에서 살았으니 제법 오래 살았을 터인데, 크게 그립지 않은 게 신기한 일이다. 금세 시선을 떼어내 사라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정부든 무엇이든 어련히 날 찾아내 원하는 대로 사용했을 것을,
왜 꺼냈어? 무슨 꼴을 보라고?
사라트:…… (잠시 시선을 두다가 먼 곳의 구조물로 눈을 돌린다. 무심한 어조가 이어진다.) 병원 밥, 맛 없잖니. 그대로 두면 너는 나갈 생각도 안 할 테고.
끝이 뻔한데 놔두자니 … 글쎄. 괜한 참견이었나. (짧은 침묵.) 정부에게 넘어가기 전에 채가고 싶었다고 해 두지.
……… 모른 척 두는 게 더 평화로웠을까. 네게는….
유리:아, 그래. (설핏 들어선 납득이 가는 말이다. 타고난 재능이 너무나 많으셔서 몇 개인지 본인조차 모르는 판국에, 누군가 재능이 탐난다고 채가는 거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아닌가.)
(그게 네가 아니었다면 말이지. 욕망이 희박해서 도리어 사람 같지 않은 옛 친구가, 하필 네가 부르기에 궁금해서 가만히 따라왔다. 너는 그런 이유로 행동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가만히 잡혀주는 것은 성미에 안 맞고... 움직이기엔, 조금 지쳤는데.
하필 네가 찾아와서 그만 움직이라 밀고 있단 말이지. (무감정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숱하게 하늘을 보았지만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 그러니까, 나올 때는 햇빛 한 조각이 마음에 들어서 나왔으니, 이번에는 구름 한 조각이 마음에 드는 걸로 할까.)
그래. (해보자. 또.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한숨 한 번, 이어서 벗어둔 방독면을 다시 쓴다.) 너도 나올 땐 방독면 써라. 오늘 미세먼지 최악이다.
사라트:삼 년이면 오래 머무르지 않았니. (한숨 같은 웃음소리. 웃는 듯 마는 듯 애매한 표정이 낯을 스쳤다. 무엇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시야 안과 시야 밖의 무언가를 동등하게 여기며 그 모두에 신경쓰지 않던 건 너보다는 내 쪽이었는데.) ...그래. 다시 나올 때는 방독면 쓰마.
(짧은 간극 후 다시 입을 연다.) 유리.
유리:응.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고) 말해. 듣고 있어.
사라트:…… 아니야. 돌아갈까. 곧, (손목시계를 보다가 고개를 든다.) 안에 있어야 할 시간이라.
유리:(물끄러미 바라본다. 작다.)
(잘못 치면 부러질 것 같지. 사람 세워두고 뭐하냐고 한 대만 칠까 고민하던 계획은 철회한다.)
사라트:(생각을 읽지 못해 다행이다.)
유리:(평균 키와 비교하면 작은 신장은 아닌데 대충 무시하는 중.)
사라트:(시선을 느꼈다.) 왜.
유리:아냐. 가자.
사라트:… 응.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발을 돌린다.)
너는... 방독면 못 맬까 봐 신경쓸 필요는 없겠다.
유리:당연한 거 아냐? 설마 이 내가 못할 줄 알았어?
사라트:설마.
나올 때보다 느린 발걸음으로,
다시 빌딩 안으로 향합니다.
문을 통과하고, 방 안으로 돌아오기까지
말이 없는 건 여전하네요.
방 안에 들어서자 사라트가 한쪽으로 손짓합니다.
책장 앞입니다.
유리:(뒤따라 들어가 옆에 선다.)
사라트:할 말이 있는데.
그 순간, 방 밖의 복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옵니다.
유리:
듣기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사라트:… 미안.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사라트는 짙은 초록색 표지의 책을 책장에서 뽑고 당신을 책장 너머로 밀칩니다.
서늘한 무표정입니다.
당신은 책장 너머 공간의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잃습니다.
...
흐려지는 의식 너머로 언뜻,
몇 번의 총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
체력 - 1
… 볼에 따스한 햇빛이 느껴집니다.
기다란 풀들이 당신의 사지를 간지럽히며,
당신은 기절한 상태로 꿈으로 진입합니다.
유리:아... 고통으로 시작하긴 오랜만이네... (욕)
다시 돌아온 정글은 여전히 고요하고 따뜻하지만, 어딘가 스산합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찬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옵니다.
정글의 나무들이 조금씩 자신의 몸을 비트는 것도 같습니다.
발에 닿는 흙은 어딘가 불쾌하게 젖어 있습니다.
비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유리:(아이씨. 시답잖은 욕설을 중얼거리고 머리를 쓸어넘긴다. 은근히 입 거칠고 욕 못한다.) 생각. 그래, 생각... 그만 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있기엔 잠이, 너무 길어.
(부딪힌 어딘가를 무심코 건드려 보다가,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을 내린다.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던 정글을 바라보고 일어선다.)
(나무는 그대로다. 감각은 이질적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변화가 있다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기억하니까. 무의식을 핑계로 숨어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지만.) 깨어나기 전에는 물이 차오를 테고, 그건 호수에서부터 시작되고, 호수는... 걷다 보면 나타나지.
(그러니 젖은 것이 유쾌할 리가 있나. 발 밑을 바라보다가 호수를 찾아 정글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정글을 따라서 걷다 보면, 나무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들은 기괴하게 몸을 비틀기 시작하더니,
당신이 걸어갈 수 있도록 한 뱡향으로 길을 터 줍니다.
길을 따라 걸을수록
점점 흙이 젖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걸어나가다 보면, 붉은 호수와 마주칩니다.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붉은 호수는 거대한 웅덩이 안에 피가 가득 찬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릿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관통합니다
붉은 호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불어납니다.
나무들은 항상 그랬듯이 다시 한번 재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
젖은 땅 위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호수 위에 떠 있는 책 한 권이 보입니다.
붉은 호수는 또다시 당신의 발목과 무릎을 적시며 차오릅니다.
유리:... (미간을 찌푸린다. 저 책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방해되잖아.
알겠으니까 좀, (비키라고 할 순 없겠군. 정신이 돌아온 참이라 제법 상식적이다. 호수 안으로 들어가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 그 다음이구나. 호수가 움직이라고 할 순 없으니 스스로 움직이기로 했다. 책 한 권에 손이 닿을 때까지 걸어가 본다.) 기다려.
피의 바다를 나아가면, 책이 손끝에 닿습니다.
유리:(붉은 수면 위로 떠오른 책을 집어들어 펼쳐본다.)
책을 펼쳐도 ...
모든 페이지는 피에 젖어 볼 수 없지만,
한 장만, 꿈처럼, 괴상하게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납의 방벽]
주문 '납의 방벽'을 습득합니다.
호수는 곧 불어나 당신을 덮칩니다.
...
유리:... (입을 움직여 무어라 소리 없이 뻐끔거린다. 그리곤, 암전이다.)
반복되는 고통. 이성 감소는 없습니다.
당신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납니다.
정신을 차리면 사라트가 밀어넣은 책장 뒤의 작은 공간 안입니다.
... 어디선가 비릿한 냄새가 납니다.
유리:... (아, 머리야.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기절하기 전에 어땠더라. 상황을 떠올린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책장 너머로 들어온 것이 다음. 그리고 기억은 총성에서 끊어진다.)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행동이 이어졌다. 책장 밖으로 걸어나간다.)
책장 너머로 나서면,
책상 위에 쓰러져 있는 사라트가 보입니다.
유리:... (다가가 사라트를 바로 뒤집는다. 피 냄새가 이어진다. 꿈에서부터 여기까지 줄곧.) 미리 깨어나서, 다행인가?
가까이 다가가 사라트를 뒤집으면...
그의 아래, 고여 있는 피웅덩이가 먼저 보입니다.
어깨와 복부에는 총상이 있으며,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 같습니다.
이성 - 1D4
유리:1
꿈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깨어나기도 전에 멋대로 쫓아온 걸 알았으면 얼마나 불쾌했겠어. 그러니 다행이지.
강제로 끌려나온 것보단 이게 낫군. 고맙다고 할까. (불쾌하게 끈적거리는 피가 손가락 끝에 닿는다. 가만히 놓아두고 시신과 주변을 둘러본다.)
사망한 사라트를 푸른 빛이 비춥니다.
사라트가 쓰러져 있던 책상 위 컴퓨터의 화면이 갑자기 켜지더니,
짙은 푸른 색의 화면 위,
패스워드를 입력할 수 있는 흰색 입력 박스와 'BLUE'라는 단어가 뜹니다.
입력 박스의 옆에는 작은 힌트 창이 있습니다.
이미지
유리:(29, 화면에 입력한다.)
이미지
29라는 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푸른 화면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입체의 푸른 구체가 텅 빈 회색 화면에서 빙빙 돌아갑니다.
구체가 사라지는 순간, 작은 폴더가 뜹니다.
폴더 안의 내용물은:
[LOG 1]
[LOG 2]
[LOG 3]
[LOG 4]
원하는 파일을 클릭하여 하나씩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리:(첫 번째 파일을 연다.)
[LOG 1]
파일은 모두 비디오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화면이 지직거립니다.
순간 커다란 손 두 개가 화면에 뜹니다.
화면은 정신없이 흔들리고, 손 두 개는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습니다.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라트의 목소리입니다.
화면이 조금 더 흔들리더니, 곧 정지합니다.
사라트:"…켜진 건가. 잘 잤니. 29번. (장난기가 미미하게 담긴 호칭.) 내가 직접 설명하지 않고, 이 비디오를 재생하고 있다는 건, 아마… 음. 피 냄새가 나겠지.
유리:그래, 안 그래도 어지러우니 제대로 좀 찍어, 사라트.
사라트:여차하면 방독면이라도 써. 냄새는 덜 날 테니. 멋대로 짐을 지게 해서 미안… 하지는 않다만, 짐이라는 생각은 하나. 미안하다 하면 네가 내 정체부터 의심할 것 같군. 조금만 버티렴. 곧 다시—"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유리:안 써. 예쁜 얼굴 가리는 취미 없으니. 맡겼으니 짐으로 가져가긴 할 테고,
(두 번째 파일을 연다.)
[LOG 2]
화면이 지직거립니다.
아까와 같은 배경과 같은 사람이네요.
다시 한번, 너무나도 익숙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라트의 두 눈이 카메라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사라트:"멋대로 꺼지는군… …이 지겨운 잿빛 행성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관심 없다면 그만두렴. 그만 보고, 어디 멀리 가서 살아.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유리:괜찮아.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무엇을 감내하기로 했는지 너는 죽어도 모를 테니. 하기야 늘 그랬지. 내게 무엇을 하는지, 네가 안 적이 있기는 해?
1분여의 침묵 후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사라트:"계속 보려고. 참. … 이럴 때만 물러선. BLUE29, 푸른 색의 29번이라는 뜻이란다. 지구의 별명, 푸른 행성과 네 환자 차트 숫자의 합성어야. 이 프로젝트의 명칭이기도 하고."
"지금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인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연구 성과가 없지는 않았단다. 시간을 멈추는 장치와, 꿈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장치를 입수했어. 어디서 입수한 건지는 물어보지 마. 답할 사람도 없기야 하겠다만. "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유리:남의 번호를 멋대로 프로젝트로 만들지 마. 하여간 어이 없는 사라트 페르테나...
원하는 대로 써먹으라곤 했지만 이렇게 알차게 써먹으라고는 안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쓸 거면 추가 요금인데.
(세 번째 파일을 연다.)
[LOG 3]
화면이 지직거립니다.
조금 초췌해 보이는 모습의 사라트입니다.
어두컴컴한 배경, 새벽으로 보입니다.
눈에는 조금 짙게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네요.
카메라를 짧게 응시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을 시작합니다.
사라트:"……29." (들고 있던 차트를 덮는다.)
"유리. 네 꿈은 태초로 이어지는, 태초의 숲으로 항상 너를 보내. 꿈의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묻지 마. 사실 궁금하지도 않잖니."
유리:잠을 자라니까? 알아.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모를 수가 없지.
생명의 밀도가 가장 높은 정글에 인간 하나 없이 냅다 집어던져 두는데, 꼭 에덴 동산에 던져진 꼴이잖아. 하하... (훔쳐오기라도 할까.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다만, 전부 재가 되어 사라진다는 문제가 있는데.
사라트:“그 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오려면, 순간적으로 너무나도 긴 시간을 뛰어넘어야 하지. 무엇이든 자연사하는 것이 도리이겠지만, 네 정신과 몸은… 그렇지 않아."
사라트가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습니다.
사라트:“지금쯤 어이없어하고 있을까. 오랜 친구의 정으로 넘어가 주렴? 그래도 내가 네 목숨은 붙들어두지 않았나.”
책상을 손끝으로 톡, 톡.. 두드리는 소리가 약하게 이어지다가 끊깁니다.
유리:차라리 자연사가 쉽군.
사라트:“……나는 약을 사용해 내 정신을 과거로 보냈어. 약은 항상 혀 밑에 넣어뒀으니까. 죽기 바로 직전 삼킬 거야. 그러니, …나는 분명히 죽겠지. 지금 시대의 세계정부 수장은, 나를 포함해 모든 과학자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는 연구에 관심이 없어. 오직 호기심뿐이…."
화면이 작게 지직거립니다.
사라트가 침묵합니다.
무표정한 얼굴,
그답지 않게도 조금은 공포에 질린 것처럼 보이는 눈이 영상 안에 담겼습니다.
유리:그래, 안 그래도 못생겼더라.
곧 눈을 덮은 공포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사라트는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짓습니다.
사라트:"... 기다리겠다 하면, 너는 와 줄까."
"이상하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쪽이 더 익숙한데, ... 왜..."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유리: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하필이면 나를 고르는 것도, 참, 재능이라고 해야 할지.
(네 번째 파일을 연다.)
[LOG 4]
화면이 말끔합니다.
사라트가 느리게 눈을 뜹니다.
비디오 밑에 작게 날짜가 찍혀 있습니다.
2054 XX. XX.
오늘의 날짜네요.
시간을 보니 당신이 자고 있을 때 같습니다.
비디오에 옅은 햇빛의 색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고 오직 입모양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사라트:'깨지 말고 푹 자렴, 유리. 영상이 끝나면, 네 침대 밑을 확인해.'
비디오가 정지합니다.
유리:... ...
(대답은 이미 했으니까, 괜찮으려나. 그러니 다른 말을 건넨다. 인사. 답신. 그리고 추신.) 이왕 골랐으니,
감히 행운이나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오만은 아닐 거야. 그렇지?
끝맺으려면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니까.
컴퓨터가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유리:(책장 뒤로 들어가 침대 밑을 본다.)
침대 아래를 확인하면, 작은 흰색 상자가 있습니다.
유리:이건가. (상자를 열어본다.)
당신이 손을 대자 상자가 연기를 내며 열립니다.
상자 안에는 작은 캡슐 하나가 든 미니 약병 하나와
노란 빛이 도는, 거대한 알처럼 생긴 장치 하나가 있습니다.
노란 장치는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네요.
약병에는 [수▒제] 라는 엉성한 테이프 레이블이 붙어 있습니다.
유리:(와중에 머리 두 번 박을 필요 없게 약까지 준비할 정신은 있었나. 못마땅하게 보다가 장치를 챙기고 약병을 열어 캡슐을 삼킨다.)
장치를 상자에서 꺼내면 아래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습니다.
[몸에 지니고 있어. 인지 실현의 의지.]
캡슐을 삼키면,
당신은 금세 정글의 꿈으로 진입합니다.
정글은 익숙한 눅눅함보다는 차가운 푸른 빛을 띄고 있습니다.
바로 전의 꿈처럼 기괴하지도 않고,
그저… 차가운 느낌을 내는 정글입니다.
유리:... (땅을 확인하듯 가볍게 발을 두어 번 두드린다. 탁, 탁. 이어서 크게, 쿵, 힘껏 한 발을 구르자 땅울음이 전해진다.)
사람이,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가진 것 다 흘려보내고 살겠다는데.
(그 꼴을 못 보고 독촉을 해. 정글이 드리워 군데군데 막힌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타고난 무엇도 세상을 위해 쓰지 않고 싶었다. 그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라고 생각했는데.)
곧 죽어도 네 손으로 뭘 불렀는지는 알고 죽게 해주마. 사라트 페르테나.
유리:(장치를 가지고 있나 품을 확인해본다.)
가지고 있습니다.
땅에 발을 구를 때마다...
발 아래에서 풀들이 빠르게 자라납니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주변을 둘러싼 나무들은 어쩐지 ...
당신을 보호하는 굳건한 방어막처럼 느껴집니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풀들이 푸르게 자라나는 가운데
저 멀리 커다란 회색 물체가 보입니다.
유리:(회색 물체를 향해 걸어간다.)
물체를 향해 걸어가자 사람 형태의 모습이 보입니다.
더 다가가자, 익숙한 얼굴입니다.
사라트네요.
이성 회복 4
사라트:……화났니.
(느리게 고개를 들어올린다.) 발 구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던걸.
유리:들으라고 했으니까 성공적이네. 그런데 의도대로 들은 것은 아니고...
(그럼 실패인가. 중얼거리곤 다가가 마주하고 섰다. 손부터 들어 냅다 이마에 딱밤을 날린다.)
사라트:(딱! 소리가 났다.) 아.
뭘 불렀는지 알고 죽게 하겠다더니. 딱밤을 부른 건가? (손을 들어 이마를 몇 초간 감싸다가 손을 내렸다.)
…. (웃는 표정은 어떻게 지었더라. 어색하게 미소짓는다.) 오랜만이야.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유리.
유리:오랜만인가, 그래. (쯧. 혀를 차고 손을 내린다.) 잘도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하는구나. 믿고 손 한 번 잡아준 대가를 크게도 치르게 하는군.
사라트:내게는 오랜만이지. 너에게는 아니겠지만. 전부 보았나. (눈 몇 번 깜박이고) ... 그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말끝이 의문형이다.)
(사과..해야겠지?) ... ...
유리:(딱밤 한 대 더 날린다.)
틀렸다. 이것까지 알려줘야 한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데 어린 천재 과학자도 이 정도 지능이라니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 거겠지? 얼마나 오래 지나서 잊어버렸는지 참 어이가 없다만 죽은 건 너다.
사람 살리다가 죽었으면 미안하다고 할 게 아니라, 못해도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하고 잘하면 아프고 무서웠다고 하는 게 맞아. 이해했어? 무슨 말인지?
사라트:무사해서 다행이다.
조금 더 지났으면 얼굴도 잊어버릴 뻔했는데, 안 올 거라고 ... 생각했다 하면 한 대 더 때릴 거니?
유리:답을 알려줘도 굳이 50점짜리 답을 받아적는 현명함 잘 봤다.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거지.
처음 건 잘 쉬던 사람 멋대로 깨운 괘씸함으로 한 대, 다음 건 오답에 대한 보상으로 한 대. 결산 끝났으니 이제 물을까. 사라트.
사라트:(멋대로 기절시킨 대가는 안 받는군.)
유리:날 어지간히도 모르는 것이야 새삼 놀라울 일이 아니니 넘어가고,
왜 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을 살리겠다고 목숨을 걸었어? 장난해?
사라트:말했잖니. 지금의 세계정부 수장은 모든 과학자들을 죽이려 한다고. 어차피 노려지고 있는 목숨이니, 하나라도 살리고 싶었나.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 (몇 초간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네 목숨이 더 중요했어.
세계에도, 내게도. 그렇게 판단했고, 행동했을 뿐이란다.
유리:... ...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도 변명하고 이해시키고자 할 생각이 없다. 이번에도 입 다물고 원하는 것을 내어주거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날을 세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입을 열었다. 우습게도.) 여태껏 참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호의든, 욕망이든, 적의든, 증오든, 내게 다가오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말이야.
감히 나를 지켜주겠다고 손을 뻗은 사람은 세상에 단 두 명이었거든. 그리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이면 됐는데. 굳이 둘을 안겨줄 때부터 생각했어. 아, 또 쌓였다. 내가 갚아야 할 빚이 또 쌓였다. 빨리 맞으면 끝날 것을 자꾸만 막아주니까, 이번엔 또, 얼마나 크게 돌아올까.
... ...그러더니 하나가 홀연히 사라지자마자 하나를 잃었지. 영영.
너, 사라트 페르테나. 세계 정부의 과학자였고 내 친구였던 너. 알고 있었지, 내가 내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
유리:그러니 내겐 세계가 어찌되든 상관 없었다는 것.
사라트:... ... 그래.
세계가 어찌되든, 네가 어찌되든. 아무것도 상관 없어서 그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 알고 있었어.
나갈 생각이 있었다면 한참 전에 나왔을 것을, 안에 마냥 머무르기에 ... 처음부터 나갈 생각도 없었단 걸 알았지.
해서 끌어내 봤어. 제 발로는 도통 움직이려 하지 않아서. ... 변덕일까...
유리:맞아. (낮은 웃음을 흘린다. 세상을 방치하던 이의 무감정한 낯이 아니다.) 상관 없으니까, 무엇도 믿지 않으니까 따라갔어. 설명이 필요할까, 가만히 놔두면 어련히 정부든 무엇이든 날 찾아내 원하는 대로 썼을 것을.
원하는 대로 쓰고 죽였을 것을, 굳이 살려내서.
세상이 내게 이 빌어먹을 재능들을 안겨줬으면, 세상을 위해 어느 재능도 쓰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을텐데.
기어코 내 어머니도 너도 이제 지키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으로 끌어내서, 세계에게 그 편이 더 중요했다 말하는구나.
사라트:...
... 안제가. 세계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 했었어. 아무것도 상관 없다고 여기지 말고, 관계를 맺고 주변을 바라보라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여기는지 알면서 그런 말을 했어.
그 말이 마지막이었지. (눈을 감고 회색 물체에 기댄다.) 전처럼 살아갈 수는 없는데, 유언을 따르기는 어려워서. 노력만. 아예 못 들은 척 살 수는 없으니까,조금만. 조금만 더... 그 말대로 해보겠다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어.
자리를 차지했으면 일도 해야겠지. 세계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다른 이들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인류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는 건 마찬가지라. 영상, 봤다면 알 텐데. 관심 없으면 그만두고 어디 멀리 가서 살라 했잖니.
죽게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 다음은 ... 글쎄. 행성을 구하고 싶으면 구해보라고, 네게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는지도. (느릿하게 눈을 떴다.) 지키고 싶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세상을.
유리:몇 번을 구해도 마찬가지야. 조금도 나아지질 않고 제자리만 맴돌아. 알면서도 매일 세상을 구하는 이유는 대의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내일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내일 느낄 햇볕이나, 내일 들을 아침 인사, ...내일 만날 사람, 고작 그런 것들.
고작 그런 내일을 주고 싶어서. 그게 다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이곳을 구하고 싶은데, 그저 그런 딱 하나의 이유만 있어도 될 텐데, 그런데 인생의 모든 순간을 끄집어내서 모든 구석을 뒤져봐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는 거야.
이해했어? 내가 왜 멀리, 어떤 기억도 없을 만큼 멀리 떠나서, 여기까지 찾아와야만 했는지?
사라트:... 너는 포기하지 않는구나. 모든 순간 속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어도.
(옷에 붙은 풀잎을 툭툭 털어내고 바로 선다.) 내일을 주고 싶다면 돌아가야겠지.
... 이해했어. (어색하게 시선을 돌린다.) 기다리는 동안 감정도 많이 닳아버렸는지. 알았던 것들마저 조금, 멀어진 것 같네. 식물도 하나 가지고 갈까.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사라트의 시선이 향한 곳.
당신의 발치를 바라보면
작은 새싹이 돋아나 있습니다.
사라트:
지능
기준치: 90/45/18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해했다.)
유리:(이해했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새싹을 살펴본다.)
새싹을 자세히 보려 한쪽 무릎을 꿇으면,
새싹이 급속도로 자라납니다.
풀을 옆으로 밀어내고,
빠르게 자라난 새싹은 거대한 나무의 모습이 되며,
거목이 된 나무는 마치 물푸레나무같은 모습을 띕니다.
마치, 거대한 이그드라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의 잎사귀는
지구의 모든 밝은 색이 섞인 것 같은 뚜렷한 색을
저마다 빛내고 있습니다.
사라트:(가까운 위치에 자라난 잎사귀를 하나 톡, 뗀다.)
나무를 가져갈 수는 없으니. (방금 떼어낸 잎사귀를 챙겼다.)
유리:이건 또, (팔을 뻗어 잎사귀를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쓸어보더니 하나를 떼어냈다.) 기억에 없는 식물이네.
사라트:물푸레나무와 닮았는걸.
사라트:같은 종은 아니더라도.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어딘가에서 차가운 연기가 새어나옵니다.
사라트:(뒤돌아본다.)
사라트 뒤의 커다란 회색 물체에,
문처럼 기다란 세로 틈이 보입니다.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리:묘비 같은 걸 지키고 서있다 했더니, ...문?
사라트:(묘비...) 시간을 정지시키는 물체야.
물체에는 작은 구멍이 나 있습니다.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구멍.
사라트:(죽은 사람과 묘비... 어울리긴 하는군.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유리:(이미 두 대 쳤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이게, (품에서 가져온 장치를 꺼낸다. 표면을 툭툭 두드려보인다.) 저기군.
사라트:그래. (살짝 비켜 섰다.)
유리:(회색 물체의 구멍에 장치를 끼운다.)
장치를 구멍에 넣자, 물체가 흰 연기를 내뿜으며 열립니다.
안은 텅 비었으며,
사람 두 사람 정도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입니다.
물체가 열리자마자, 정글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사라트:... 물? (발목까지 올라와 찰랑대는 물을 말끄러미..)
(보다가 장치 안으로 들어간다.)
유리:한눈 팔지 마. (말끄러미 보는 것 못마땅하게 봄.)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뒤따라 들어간다.)
물체 안은 곧 불투명한 흰색 연기로 가득 찹니다.
서서히,
의식이 멀어집니다.
...
...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침대 위네요.
이불이 끌어올려져 덮여 있습니다.
유리:(왜 이 천장이 익숙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
왜 이 천장이 익숙해져야 하는가...
사라트는 책상 앞에 앉아 있네요.
피투성이였던 그의 몸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무언가를 뚫어지게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의 표정이 ... 미묘하게
밝은 것 같습니다.
유리:(걸어 나와서 책상 앞에 섰다.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다가) 사라트.
사라트:(현미경에서 눈을 뗀다.) 잘 잤니, 유리.
조금 잠긴 목소리입니다.
사라트:과거에서 사람을 구해온 기분은 어떠니.
유리:잘, ... 그래. 오랜만에.
이 내가, 뭔들 못하겠어?
사라트:(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한숨처럼 웃는다.) 그래.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 (들고 있던 플라스크를 내민다.)
보겠니.
유리:문제는 그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거지만. 카산드라의 피라도 섞였나. (플라스크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본다.)
초록색으로 빛나는 액체가 들어 있습니다.
사라트:태초의 숲에서 가져온 잎사귀. 세상의 모든 식물질의 DNA가 내포되어 있더군. (일어나자마자 일했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한다.)
유리:생각보다 빠르네. (당연히 그랬을 것 같아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라트:식물들의 광합성을 다시 시작시킬 수 있는 자극제 추출도 마쳤단다. 이제 한 단계만 더하면. (책상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린다.) 지겨운 잿빛 건물과는 작별이야.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책상 위,
총과 닮은 물체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리볼버와 닮았으나,
오직 회색 금속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라트:(시선이 향한 곳을 본다.) 촉진제를 하늘로 쏘아 올릴 거야. 그걸로.
유리:그거 참, ...촉진제가 붉은색이 아니길 빌어야겠군.
그 순간,
문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립니다.
유리: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모를 수 없는 소리입니다.
사라트가 죽기 전 들렸던 소리니까요.
사라트:시간이 됐군. (총을 닮은 물체를 챙기고, 문 옆으로 다가가 가까이 오라며 눈짓한다.)
유리:(하. 짜증스러운 숨을 내쉬고 문 옆에 다가섰다.) 비슷한 것 말고 진짜 총은 없나? 내가 더 잘 쏠 텐데.
사라트:있겠니.
사라트는 문 옆에 당신을 데리고 숨더니,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정부 군인들을
...전기 충격기로 기절시킵니다.
사라트:임시방편이지만.
유리:(어깨를 으쓱이고는) 비켜봐. (쓰러진 군인들 앞에 서더니 한 명씩 정성스레 짓밟는다. 정확하게 체중을 실어 갈비뼈만 또각 부러트려 놓았다.)
사라트:?
유리:이제 좀 오래 가겠네.
사라트:...
유리:뼈가 잘못 부러져서 장기를 찔렀으면 아예 갈 수도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고.
사라트:(유리와 군인들을 번갈아 보며 당황한 눈빛을 잠시 내비치다가) 너도 참. (플라스크도 마저 챙기고 손을 내민다.) 가자. 이번에는 혼자 두고 죽지 않을게.
유리:...그래. (한숨을 한 번 더 내쉰다. 이번에는 더 깊었다.) 이건 말 안 한 것 같아서 얘기하는데, 사라트.
따라온 것, 일어난 것, 전부 다시 한 번 절망하기로 각오하고 시작한 거였어. (내민 손을 잡았다.)
사라트:손을 잡는 것도? (손을 힘주어 잡고 피투성이 복도를 달린다.)
사라트는 당신을 이끌고 건물 밖을 향해 뜁니다.
건물의 곳곳에는 피가 튀어 있습니다.
아까 들이닥친 군인들 외에는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습니다.
곧 둘은 건물 밖으로 나섭니다.
짙은 먹구름이 지고, 거리는 잿빛으로 가득합니다.
어둑어둑하게 해가 지고 있네요.
유리:그렇지 않고서야- 미쳤다고 널 믿고 네 손을 다시 잡아?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곧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입니다.
사라트는 당신을 이끌고 멀리,
문이 열린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릅니다.
몇 층인가를 오르면, 열려있는 옥상 문이 보입니다.
사라트:각오를 몇 번이나 하게 하는군.
유리:그걸 두 번 할 생각을 하는 내가 우주 제일의 멍청이지.
가자. 얼마 안 남았어.
남은 계단을 오르자
잿빛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입니다.
사라트가 리볼버를 닮은 탄창을 옆으로 밀자,
무언가가 들어갈 자리가 보입니다.
그는 플라스크에 들어 있던 초록색 액체를 탄창에 부은 다음,
당신에게 총을 건넵니다.
사라트:친구 잘못 둔 우주 제일의 멍청이. 잡아.
유리:왜 내가? 네가 해.
사라트:네가 더 잘 쏜다며. 쥐렴.
유리:(한쪽 눈썹만 까딱이더니 부정은 않고 총을 받아들었다. 팔을 하늘로 곧게 뻗는다.)
이건 잊지 마.
내가 찾아낸 이유는 내가 내일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니야.
네가 이 행성에 내일을 선물한 것. 그걸 안 채로 내일을 맞는 것.
겨우 그거 하나였어. (방아쇠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기자, 총구에서 짧은 빛이 비춥니다.
총구에서 발사된 초록 빛은 곧
레일건과 유사한 발사 모습으로 먹구름을 향해 올라가며,
이내 먹구름 안에서 초록색 빛이 잠시 은은하게 반짝였다 사라집니다.
천둥 소리가 들리더니,
한 줄기의 비가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빗방울은 당신의 팔 위에 떨어지고,
곧 우레와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쏴아아—…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는 세상을 씻어내릴 것처럼 내리고, 온 거리를 적십니다.
비 냄새가 사방에 진동하며, 차가운 빗물이 상쾌합니다.
유리: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선의 한 구석에 초록빛이 어른거립니다.
그 곳에서는, 무엇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나무네요.
잔디도 자라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이 세계정부 빌딩의 한 면을 휘감습니다.
사라트는, 당신이 보는 것과 분명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상이 아니네요.
이건 분명한 식물종입니다.
잿빛 도시가 조금씩 푸르게 바뀌기 시작합니다.
식물종이 도시를 뒤덮고, 사라트는 당신을 바라봅니다.
사라트:그게 네가 찾은 이유니.
유리:28년치 기억 다 뒤져서 겨우 하나 찾았다.
일한 놈, 일한 값은 보고 가게 하자.
사라트:...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다문다. 하늘과, 식물과, 녹색이 드문드문 보이는 잿빛 도시에 차례대로 시선을 두다가 마지막에 시선을 둔 곳은...) ... (눈앞의 유리.)
그래. (몇 걸음 다가서서 느릿하게 끌어안는다. 아주 짧게.) 알겠어. (겨우 그 말만 하고 떨어졌지만.)
유리:뭐를? (약간 어이없어졌다. 그래도 역시, 아주 오랜만에 빗물에 젖은 기분이 상쾌하다. 그제서야 눈꼬리를 휘며 시원스레 웃었다.) 웃는 건 이렇게 한다. 아는 것 없는 사라트 페르테나.
그래도, 이번엔,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다시 도시에서 자라나는 녹색 물결에 눈을 돌린다. 오래 기억에 담을 광경이라면, 역시 이런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애썼어. 잘했다.
사라트:(어색하게 흉내내어 웃어보이다가 금세 그만둔다. 저 표정은 무리야.)
... 그래도, 피... 보게 해서 미안해.
유리: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진짜 사람 마음 모르는 놈)
사라트는 오묘한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라트:유리.
유리:왜.
사라트:28년치 기억 중에, 피투성이 복도의 기억을 잊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유리:웬일로 참 인간적인 소릴 하네. (선택지만 덜렁 통보하는 게 아니라 제안이라는 점도 포함해서. 생각하고는) 내버려둬. 그거 하나 잊는다고 나아질 기억들이 아니니.
지울 거였다면, 다른 걸 지웠겠지.
사라트:다른 걸?
유리:애초에 내 직업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 던지듯 천천히 말을 뱉었다.) 내 어머니 죽던 날, 멍청하게 뭘 하고 있었는지 초 단위로 대조하는 기억이나,
그 날 관을 앞에 두고 들었던 감정 같은 것들.
그 이후로 28년치 기억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통째로 지옥이니까, 뭘 잊어도 거기서 거기겠다만... (심지어 지금도, 뭘 보고 뭘 듣고 뭘 먹어도, 새롭게 생기는 기억마저 전부.) 그 속에서도 한 번씩은 웃었어.
그러니 괜찮다. 이까짓 것.
사라트:... (옅게 웃음지었다.)
사라트는 곧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성 회복 1D2
유리:1
유리:
지능
기준치: 95/47/19
굴림: 8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쩐지...
아주 약간,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주문 <납의 방벽>이 떠오릅니다.
유리:...납의 방벽?
흐릿해질 리 없는데,
사라트가 무언가 한 걸까요.
주문 <납의 방벽>을 외웁니다.
마력 1 차감.
이성 1D10 감소합니다.
유리:4
이성 4 차감.
...
의식이 서서히 멀어집니다.
...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당신.
더 이상 정글의 꿈은 당신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그 사건이 있던 이후로….
사라트는 정식으로 정부의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지겹다더니, 나올 생각은 없었나 봅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세계정부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성이 다시 푸른 색으로 변한 이후,
홀연히 자취를 감춘 세계정부의 수장과 함께
세계정부는 와해되었습니다.
유리:튀어? 감히 마음대로 튀어?
……방에 앉아 있는 동안,
TV 소리가 들립니다.
사라트가 나오네요.
짧은 인터뷰가 있습니다.
도망치지 못해 선 것이 뻔히 보이는 표정입니다.
유리:시킨 놈들, 실행한 놈들, 동참한 놈들, 이제부터 하나씩 죽는다. (뚝. 뚝. 손가락 뼈 꺾으며)
사라트:"…혼자 한 일이 아닙니다. 저를 도와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네가 이 행성에 내일을 선물한 것.
그걸 안 채로 내일을 맞는 것.
하나는 제대로 알려주었네요.
...
그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유리:뭐야. (벌컥)
문을 열자, 서 있는 사람은 ...
찾아올 사람이 누구겠어요.
사라트입니다.
무려 석 달만의 방문입니다.
...
사라트:실행한 놈들에 나도 포함되니. (안고 있던 꽃다발부터 내민다.) ... 안녕, 유리.
유리:피해자도 포함시켜야 했나? (꽃다발을 받아들고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야, 사라트.
사라트:제외해 주렴. (전보다는 조금 더 자연스럽게 웃는다.) 그래. 오랜만이야.
꽃다발을 받아듭니다.
그 꽃은 자운영.
꽃말은, 나의 행복.
당신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 덕에 그가 저 꽃다발을 들고 당신을 방문할 수 있었는지.
BLUE29
END 2. PC 생환, KPC 생환.
자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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